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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미국 두얼굴 ‘고발’…노동자 보듬던 ‘김백리’

등록 2011-05-24 22:56수정 2011-05-25 09:59

고 김은숙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장례식장에서 24일 오후 고인의 어머니 최금련(84·뒷모습)씨가 조문객들의 위로를 받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고 김은숙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장례식장에서 24일 오후 고인의 어머니 최금련(84·뒷모습)씨가 조문객들의 위로를 받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주도 김은숙씨 별세
엄혹했던 82년 반미 불밝히고
출소 뒤 공부방 꾸려 교육운동
임수경씨 ‘암투병 돕기’ 음악회
고 리영희선생 아들은 주치의로
“사랑해.”

임종을 지켜보는 두 딸 등 가족에게 이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김은숙씨는 24일 아침 7시50분 삶을 마감했다. 지난해 8월 너무 늦게 발견된 위암과 10개월가량 힘겨운 싸움을 벌였지만, 끝내 병마를 물리치지는 못했다.

쉰세해의 인생에서 김씨는 30년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 혹은 장본인으로 살았다. 부산의 고신대학교 윤리교육과 학생이던 1982년 3월18일, 문부식씨 등 동료 5명과 함께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나라”는 내용을 담은 전단을 뿌리며 부산의 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흔히 ‘부미방’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그동안 ‘우방’ 또는 ‘혈맹’으로 밝게만 채색돼 있던 미국의 ‘실체’에 처음 의문을 제기한 전환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사건 이후 14일 만에 자수한 김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하다 감형돼 5년8개월 만에 사회로 돌아왔다. 그는 고은 시인이 ‘숨은 꽃’이라고 부를 정도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소설가·번역가로 글을 쓸 때도 ‘김백리’라는 필명을 썼다.

이날 오후 서울 면목동의 녹색병원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사진에서 김씨는 밝게 웃고 있었다. 지난해 노동자 자녀 공부방 ‘참 신나는 학교’ 학생들과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까지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와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평화시장 인근에서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의 교장으로 활동해 왔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사업 때문에 하루 4시간밖에 못 자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의 투병 소식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통일운동가 임수경씨를 통해서였다. 임씨는 지난 4월 김씨를 위해 치료비를 모으고, 투병을 응원하는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두 달이 안 되는 짧은 기간인데도 후원에 뜻을 보탠 이가 1000명을 넘었다. 김씨의 임종 직전까지 곁을 지켰던 임씨는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의 관심과 성원을 보며 언니는 생전에 무척 기분 좋아했다”면서도 “지난 투병기간 동안 언니가 너무 고통스러워했는데 이제 그 고통이 끝난 것 같다”며 이내 목이 메었다.

김씨를 보살핀 이가 한 사람 더 있다. 녹색병원에서 외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고 리영희 선생의 둘째 아들 이건석씨다. 이씨는 지난 3월말 김씨의 가족들에게 의향을 비친 뒤 김씨의 주치의로 2개월 동안 김씨를 정성스레 돌봤다. 이 병원 양길승 원장도 “처음엔 여생이 4주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김씨의 의지와 주변사람의 도움으로 8주를 살았다”며 “끝까지 고인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26일 오전 9시 발인 예배 뒤 경기도 성남 삼성공원묘지에 묻힐 예정이다. 발인 전날인 25일 저녁 8시30분에는 녹색병원에서 조촐한 추모모임이 열린다. 유가족으로 어머니 최금련(84)씨와 동생 김강호(50)씨, 딸 김유채(22)씨와 하린(19)양이 있다. (02)493-4444.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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