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란씨
박경란씨, 조선족·북한 어린이 돕기
5년간 빚은 작품들 아낌없이 내놔
5년간 빚은 작품들 아낌없이 내놔
5년 내내 꽃 모양 도자기를 빚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손 끝에 어려 흙으로 녹아들었다. 1200여개 꽃 도자기는 이렇게 해서 피어났다. 미술작가이자 고교 교사인 박경란(62·사진)씨가 지난 봄 열두번째 개인전 <하늘정원에 핀 백만송이 꽃>을 준비할 때 이야기다. 전시회는 끝났지만 ‘백만송이 꽃’은 국경을 넘어 중국 조선족·북한 아이들에게 ‘희망의 꽃’이 될 예정이다.
박씨는 1200여개 작품을 중국 조선족·북한 원조사업을 하고 있는 사단법인 봄(이사장 김원)에 기증했다. “지난 봄 서울 종로 갤러리 세줄에서 전시를 시작하면서 ‘(작품) 분양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는데, ‘봄’ 관계자가 이를 보고 분양을 신청했어요. 중국 연변에 어린이집을 짓고 북한 어린이한테 백신을 놔준다고 하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씨의 작품 기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1969년 국전에서 추상화 작품으로 첫 대통령상을 받았던 고 박길웅(1940~77) 화백의 아내다. 20살 무렵, 박 화백의 대통령상 수상 소식이 실린 ‘전단’(삐라)을 보면서 ‘이 사람과 결혼해야지’ 생각했단다. 이후 아는 교수님을 통해 박 화백의 제자가 되면서 연을 맺고 정말 결혼을 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남편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씨 나이 29살 때였다. 갓 돌이 지난 딸과 시어머니 부양은 온전히 그의 몫이 됐다.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남편 작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지난 84년 작품 80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박씨는 기증 작품을 관리하는 미술관에 섭섭함도 토로했다.“지난 98년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미술관을 찾아 박길웅 전시회를 열어달라고 사정했지만 거절당했어요. 시어머니가 아들 작품을 보고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해줬다면 감사했을텐데…. 기증 당시 회고전과 그 뒤 30주기전을 했지만 유족의 뜻이 반영된 전시는 열린 적이 없어요.”
박씨는 오는 11월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열릴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그에게 미래 계획을 물었다. “인생 계획한다고 해서 되는 게 있나요. 모든 것이 늘 흘러가듯이 자연의 물결에 맡기지요.”
박씨의 기증 작품 중 일부는 27일 서울 안국동 윤보선 고택 정원에서 열리는 봄 후원 행사에서 볼 수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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