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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미군도 몰랐던 고엽제 위험, 보상싸고 미 정부와 전쟁중”

등록 2011-05-29 21:13

1969년 봄, 주한미군 2사단 산하 2공병 대대의 필 스튜어드 중위(당시 21살·맨 앞에서 노를 들고 있는 군인)가 임진강 수색작업을 끝낸 뒤 부대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당시 이들은 북한 요원의 시신이 발견된 임진강에서 수색작업을 통해 옷가지 등을 찾아냈다.  필 스튜어드 제공
1969년 봄, 주한미군 2사단 산하 2공병 대대의 필 스튜어드 중위(당시 21살·맨 앞에서 노를 들고 있는 군인)가 임진강 수색작업을 끝낸 뒤 부대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당시 이들은 북한 요원의 시신이 발견된 임진강에서 수색작업을 통해 옷가지 등을 찾아냈다. 필 스튜어드 제공
‘고엽제 살포지시’ 주한미군 퇴역장교 스튜어드
“40년전 캠프주변 대량살포 지시한 나도 후유증 심각
직접 뿌린 부하들 어떨지…살아있는 한 끝까지 싸울것”
“40년 전 한국에서 나는 부대원들에게 ‘명령을 잘 이행한다면, 나는 너희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40년 전 그 약속이 내게는 지금도 유효하다.”

캠프 캐럴 고엽제 매립 의혹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퇴역 주한미군 장교가 5년 전부터 고엽제로 고생하는 옛 부하들을 위해 미국 정부와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경기도 임진강 주변을 관할하던 주한 미2사단 산하 캠프 피터슨과 캠프 이선 앨런의 공병 2대대 중위로 1968년 10월부터 1969년 12월까지 근무했던 필 스튜어드(63)는 28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부대원들과 함께 캠프 주변, 임진강 기슭, 자유의 다리, 비무장지대(DMZ) 도로 등에 ‘에이전트 오렌지’와 모뉴론을 300~500드럼 정도 뿌렸다”고 밝혔다. “북한 지역 경계를 위한 시야 확보와 막사 주변 잡초 제거를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그도 부하들도 고엽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전혀 몰랐다. 고엽제를 뿌린 직후 바로 옆에서 몸을 씻고, 물을 마시기도 했다.

1970년 11월 전역한 스튜어드는 이후 20년간 법률 관련 업종에 종사했고, 90년 무렵부터 조지아에서 성조기 판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 2003년 심장마비 증세가 닥쳤다. 급기야 2006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뿐만 아니라 당뇨, 관상동맥 질환, 고혈압, 신경장애, 백내장, 디스크, 피부암 등 온갖 형태의 질환이 그를 덮쳤다. 유전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질환이 과거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결국 보훈처와의 오랜 실랑이 끝에 그는 2009년 보훈처로부터 ‘과거 근무로 인한 피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그는 병마와 보훈처 등 양쪽과 싸우면서 40년 전 옛 부하들에게 한 약속을 떠올렸다. 69년 4월, 그는 부하 장병 285명에게 “너희들이 내 명령을 잘 따른다면, 나 또한 너희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장병들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고엽제를 직접 뿌리지도 않은 내가 이럴진대, (내 명령을 받고) 직접 손으로 뿌린 장병들은 어떠했겠느냐’는 생각에 5년 전부터 과거 부하들을 수소문해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고 전했다. 그는 “그 결과, 3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숨졌고 150여명이 투병중이며 상당수가 고엽제 후유증을 보훈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말초혈관 장애로 두 다리와 팔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옛 부하들을 대신해 보훈처에 고엽제 피해 신청과 재심 요청 등을 하러 다니고, 옛 자료와 증거물을 모으고 정부 관계자와 국회의원을 만나러 다녔다. 그러면서 그는 옛 전우들을 찾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미 보훈처가 지난 2월 고엽제 살포에 따른 한국 주둔 미군 장병들의 보상기간을 ‘68년 4월~69년 7월’에서 ‘71년 8월까지’로 2년 연장한 것도 바로 스튜어드의 끈질긴 항의와 자료 제출 등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미국 정부가 고엽제에 관한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늙은 우리들이 죽기만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며 “한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40년 전에 한국 땅에 가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렀고, 지금은 고엽제 후유증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 있는 한, 40년 전 약속을 위해서라도 계속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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