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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유신헌법 홍보 위해 교사들 가정방문 시켜 / 정해숙

등록 2011-06-05 19:58수정 2011-06-14 10:03

1975년 5월 전남여고 이대로 교장에게서 10년 근속상을 받고 있는 필자. 66년 봄 전남여고로 전근을 간 필자는 76년 봄까지 햇수로 11년간 수학 담당이자 사서교사로 재직했다.
1975년 5월 전남여고 이대로 교장에게서 10년 근속상을 받고 있는 필자. 66년 봄 전남여고로 전근을 간 필자는 76년 봄까지 햇수로 11년간 수학 담당이자 사서교사로 재직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15
유신헌법 홍보 위해 교사들 가정방문 시켜
1966년 봄 전남여고로 발령받아 근무를 하면서도 중학교 수학교사 자격증만 갖고 있는 게 마뜩잖아서 67년 고교 수학교사 자격증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그런데 첫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출제 경향을 알게 된 기회로 삼고 이듬해에 재도전을 했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면접시험을 보는데, 담당 교수 앞에서 제시받은 문제를 구두로 푸는 방식이었다. 수학 교과서의 저자이자 서울대 교수였던 이성헌 교수가 면접시험관이어서 서울대로 가서 면접을 봤다.

시험장에 들어서니 처음에는 무척 긴장되고 떨렸지만 문제를 칠판에 판서하면서 무난히 풀어낼 수 있었다. 다행히 합격이었다. 69년 1월 합격증을 받았는데, 마침 정상섭 과학과 장학사가 장학지도차 학교에 왔다가 축하와 격려를 해주었다. “정해숙 선생님! 고시 패스보다 어렵다는 수학과 검정고시에 합격하셨다니 정말 축하합니다.” 그렇게 고교 수학교사 자격증을 받아 전남여고에서 30대의 10년간을 근무했다.

전남여고 재직 초기 전남여중 학생들도 가르치던 시절 1년간은 나도 과외수업을 했다. 내가 수업을 맡은 반 학생들이 조를 만들어 요청을 했고, 부모들 요구도 있어 하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현직 교사로서 과외를 하면서 따로 돈을 받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1년 만에 그만두었다. 당시만 해도 영어나 수학 담당 교사들의 과외수입은 월급보다 많기도 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나는 교직생활을 비교적 행복하게 시작했고, 줄곧 보람을 느끼며 지냈다. 그런 내게도 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68년 막내 아이를 가졌을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3층 교실까지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으니 수업에 충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사표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면 ‘오늘은 사표를 내야지. 내야지’ 하면서도 못 내고 돌아오기를 며칠 반복하던 시절이었다. 그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훗날 전교조 활동까지 하게 되었으니, 지난 일을 돌이켜 볼 때 문득 인생의 길이란 무엇인가 정해져 있지 싶다.

1960년대 말~70년대 초는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한 3선 개헌과 유신헌법 제정 등을 추진하면서 정치·사회적 격랑이 심했던 시기였다. 대규모 학생시위와 ‘3선 개헌 반대투쟁위원회’ 결성 등 국민들의 반대, 전태일 열사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인간선언과 분신사망이 있었다.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박정희 정권은 ‘남북통일을 위해 정치체제를 개혁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고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유신헌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불안한 정치상황은 학교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교사들을 동원했다. 담임이든 비담임이든 모든 교사들을 3~4명씩 조로 나눠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가정방문을 하도록 했다. 학부형을 만나 “유신헌법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살리는 가장 이상적인 헌법”이라고 선전을 해야 했고, 가정방문을 다녀온 뒤 조장은 반드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광주만 그랬겠는가? 미루어 짐작건대 전국의 교사와 공무원들이 그렇게 유신헌법 선전요원으로 동원되었을 것이었다.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정부의 시책은 느닷없는 여교사회 창립으로도 나타났다. ‘전라남도 중등여교사회’도 회원 500여명으로 72년 8월 결성됐다. 학생회관 강당에서 열리는 창립행사에 여교사 전체가 참여하도록 공문이 내려왔다. 여교사회는 교육청의 가정과 담당 장학사가 책임을 맡도록 해서 자연히 각 학교 가정과 교사들이 주도했던 것 같다. 초대 회장도 가정과 교사인 박정순 선생님이 맡았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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