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자유화 10년 전인 1979년 8월 필자(오른쪽)는 덴마크에서 열린 국제도서관대회에 한국대표단으로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했다. 대회가 끝난 뒤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있는 대문호 괴테의 생가, 괴테하우스를 둘러보며 조카와 함께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20
1979년 8월 말, 덴마크에서 열리는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대회에 한국도서관협회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대표단은 도서관협회 사무총장, 대학도서관장, 도서관학과 교수, 정보학교 교장, 출판사 사장 등 8명이었는데 교사로는 내가 유일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이 89년이니 당시는 돈이 있어도 외국 나들이가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다. 공식 국제행사의 한국대표인 우리도 정부의 허가를 받고 나가게 됐는데 난생처음 2주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둘러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소중한 기회였다.
회의는 덴마크의 한 공원에서 열렸고, 당시 여왕도 참석했다. 여왕이 입장할 때는 모두 기립해 박수로 환영해달라고 사회자가 요청하기도 했다. 나는 여왕이 어디에 앉는지가 궁금해 유심히 살폈다. 한국에서는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온갖 정부행사 때마다 요직에 있는 인사들이 단상에 줄줄이 앉고 아래쪽 객석에는 일반인들이 앉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행사장에서는 단상에 의자도 무엇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왕도 우리가 앉아 있는 객석의 맨 앞줄에 앉았다. 발제를 하는 인사들도 객석에 앉았다가 순서에 따라 단상으로 올라가 발표했다. 우리와 사뭇 대비되는 풍경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도서관대회는 학교·대학·공공·특수 도서관 등 분야별 도서관 참관과 토론 등으로 5일간 열렸다. 그런데 하루는 현지 한국대사관 직원이 우리 숙소를 방문했다. 그는 대표단의 정보학교 교장 선생님과 친분이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요즘엔 바쁘지 않으냐’고 물으니 ‘요즈음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고 답했다. 현지 동포들 초청으로 함석헌 선생이 덴마크를 방문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강연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북한의 어린이 공연 사절단도 동포들 초청으로 방문해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우리나라의 리틀엔젤스 예술단이 미국 공연 등을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북한의 어린이 공연 사절단도 유럽을 돌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기에 무척 놀랐다. 정부의 철저한 정보 통제 속에 북한은 못살고 전쟁을 즐기는 나라라는 일방적 세뇌 방송만 들어왔기 때문에 실은 충격이었다.
도서관대회를 마친 뒤 우리 일행은 한국도서관협회가 주선한 일정에 따라 유럽의 몇개 나라를 돌며 도서관을 견학했다. 네덜란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다가 땅보다 높은 지형을 잘 활용하는 것이었다. 고속도로 위로 우리나라 육교 같은 시설이 설치돼 있고 그곳으로 물이 흘렀다. 바닷물을 완전히 정복한 나라라고 할까?
영국에서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식민지 약탈문화의 모든 것을 확인한 듯해 씁쓸하면서도, 도서관의 엄청난 규모에는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영국에서는 영어 때문에 재미있는 일화도 겪었다. 택시를 타고 도서관을 찾아가면서 기사에게 위치를 얘기했는데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일행 중에 영문학과 교수가 있어서 안심하고 탔던 일행들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 기사는 엉뚱한 장소에 내려주면서 자기는 미국식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며 젊은 기사의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미국을 ‘양키’라 부르며 은근히 무시하던 당시 유럽의 분위기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독일에서는 60년대 파견된 간호사들도 만나고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의 현실을 보면서 새삼 아픔을 되새겼다. 이탈리아에도 들러 로마도서관과 바티칸의 유서 깊은 가톨릭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서유럽의 발달된 대형 도서관 시설과 운영 사례도 유익했지만, 마을마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더 큰 감동과 부러움을 느꼈다.
또 천년 넘은 전통도시에 대한 보존 노력과 도시설계 역시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케임브리지 같은 전통 교육도시에서는 건물 높이도 법적으로 제한하며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계획 없이 우후죽순처럼 건물이 올라가던 우리의 도시계획 실상과 좋은 대비가 됐고, 전통을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 유럽 방문이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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