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당신이 ㅈ인가?” “당신이 박이오?”
첩보전 방불케한 5억 가방 전달

등록 2011-06-13 08:25수정 2011-06-13 11:26

지난해 5억 쪼개 두차례 전달
호텔서 암구호 대고 가방 건네
심부름꾼 ㅈ씨 “누군지 몰랐다”
“당신이 ㅈ인가?” “당신이 박이오?”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크우드 호텔 지하 커피숍. 180㎝ 키에 건장한 두 남성이 조심스레 서로의 신원을 확인했다. ㅈ씨는 준비해 간 가방을 넘겼고, ‘박’은 유유히 사라졌다. 이들이 나눈 다른 대화는 없었다.

사정기관과 복수의 부산저축은행 관계자가 전한 말을 종합하면, 부산저축은행그룹이 브로커 박태규(72·해외 체류 중)씨한테 건넨 로비자금은 첩보전을 연상케 할 만큼 은밀하게 전달됐다. 암구호를 대듯 서로의 신원을 확인한 두 사람은 현금 다발이 들어 있는 가방만 주고받은 뒤 곧바로 헤어졌다. 돈 전달을 부탁받고 ‘심부름꾼’ 노릇을 했던 그룹 관계자 ㅈ씨는 검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 그 ‘박’의 이름이 ‘박태규’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ㅈ씨가 박씨를 만난 시각은 지난해 7월6일과 14일, 각각 오후 4시께.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현금 5억원을 탈탈 털어 1억5000만원과 3억5000만원으로 쪼갠 뒤 여행 가방 2개에 넣어 ‘박’에게 전달했다. 이보다 며칠 앞서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김양(59·구속기소) 부회장이 그에게 전화를 했다. “자네가 가진 현금을 준비해서 6일과 14일 오크우드 호텔 지하 커피숍으로 가게. 건장한 중노인이 들어와 ‘네가 ㅈ이냐’고 묻거든 ‘당신이 박이냐’고 다시 묻고 가방을 건네게.” 돈은 그렇게 건너갔고, 김 부회장은 그 뒤 ㅈ씨에게 5억원을 갚았다.

돈가방 자료사진. 사진 네이버 카페 붕어만
돈가방 자료사진. 사진 네이버 카페 붕어만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뒤, ㅈ씨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출석 요구를 받았다. 검찰은 이미 그가 ‘박’을 만났다는 사실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주춤거리자 검찰은 김 부회장과 대질까지 했다. 검찰은 ㅈ씨에게 △무슨 명목으로 5억원을 건넸는지 △김 부회장이 박씨한테 10억원을 줬다는데, 나머지 5억원의 행방을 아는지 등을 캐물었다.

그러나 ㅈ씨는 돈을 전달한 이유 등을 알 수 없었다. ‘박’의 실명이 박태규라는 사실조차 검찰에 가서야 알 정도로 깜깜했다. 그는 다만 지난해 6월29일에 있었던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의 1000억원 유상증자에 박씨가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거액의 증자가 성사된 직후 뭉칫돈이 건너간데다, 김 부회장이 평소 “증자하면서 신세진 곳이 많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ㅈ씨는 검찰의 추궁으로 박씨를 만나려고 오갈 때 탄 택시의 신용카드 영수증, 돈을 담은 가방의 영수증, 커피숍 카드 계산서까지 모두 제출했다.

검찰은 박씨가 받은 5억원이 증자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준 데 대한 성공사례금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검찰은 박씨가 ㅈ씨 말고 다른 부산저축은행그룹 관계자한테도 5억원의 뭉칫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의 흐름을 쫓는 한편, 지난해 하반기 부산저축은행그룹이 퇴출 위기에 몰렸을 때 박씨가 여권 실세를 상대로 구명 로비에 나섰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노현웅 김정필 기자 golok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최강’ 한국 양궁자매, 일 대표로 나선다
자동차·철강업계 근무형태 ‘조용한 혁명’
회사 청년과…낯선 아저씨와…이 사랑의 이름은 뭘까
“가족같은 서포터 앞에서 승부조작 엄두도 못내요”
국립공원도 입장료 없앴는데…‘생태 관광’ 손벌리는 지자체
‘가족요양’ 급여 내달 대폭 삭감
국세청, SKT에 1000억 세금추징 통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