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표현자유 등 헌법소원 처리 차일피일
법정 시한 10배 넘기기도
“권리구제 효과 반감” 지적
법정 시한 10배 넘기기도
“권리구제 효과 반감” 지적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연다. 20년 이상 줄곧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1965년 한일 정부가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이에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 협정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지난 2006년 7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협정을 체결할 당시 한국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다하지 않아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행복추구권과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는 주장이다. 17일을 기준으로 1808일이 지났지만, 헌재는 지금껏 결정을 내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이 정하는 종국결정 시한 180일을 10배 이상 넘긴 것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헌재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2005년부터 올해 6월1일까지 접수된 헌법소원 심판사건 8442건의 처리 현황을 보면, 종국결정을 받은 3315건의 평균 소요기간은 350일로 법이 정한 기간을 두배 가까이 넘겼다. 사전심사를 마치고 심판에 회부돼 아직까지 심리가 진행중인 사건 546건 중 243건은 법정기간(180일)은 물론, 평균 소요기간인 350일도 훌쩍 넘겼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낸 헌법소원과 같이 헌재가 결정을 오랫동안 미루고 있는 사건은 대부분 정치적·사회적 민감도가 높아 결과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되는 사안들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촛불집회 때 서울광장의 사용을 불허하고, 차벽으로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해 제기된 헌법소원은 사건 접수 696일이 지났다.
온라인 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따지는 사건들도 대기 중인 사례가 여럿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인터넷·트위터 등의 접속주소 차단 권한을 부여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는 1066일, 포털사이트에 특정 컨텐츠의 게재를 중단하도록 할 수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 지 490일이 흘렀다.
서울광장 사용불허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는 “위헌 결정이 날 경우 오세훈 시장이나 경찰의 방침이 완전히 부정되기 때문에 헌재가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 같다”며 “헌법소원은 결정이 늦어질수록 당사자의 권리구제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도 결정을 빨리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도 “일부 사건의 경우 헌재가 정치적 공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재판관의 6년 임기가 끝날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것 같기도 하다”며 “국민들이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인 만큼 국민의 다급한 심정을 고려해 신속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 사무처는 “9명의 재판관이 개인당 평균 92건의 헌법소원을 맡고 있을 정도로 사건 수가 많다”며 “헌재 결정이 갖는 사회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신중하게 심리를 하느라 기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