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구역 세입자들 쥐꼬리 보상·강제철거 위기
카페 ‘마리’서 점거농성…두리반도 ‘불침번 연대’
카페 ‘마리’서 점거농성…두리반도 ‘불침번 연대’
‘이모낙지·오징어식품·부산오뎅·가야삼계탕·한분식….’
서울 중구 명동성당 인근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가게들 이름이다. 주변 직장인들이나 명동으로 관광 온 외국인들이 자주 찾던 이 가게들은 이제 모두 문을 닫았다. 명동성당 맞은편 일대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이곳에 세를 얻어 장사하던 상인들이 쫓겨나는 것이다. 제일 먼저 재개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명동 도시환경정비 3구역은 지난 4월8일과 6월4일 두 차례에 걸쳐 명도집행이 끝나 가게 11곳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각각 10곳 넘는 가게들이 영업중인 2구역과 4구역에서도 상인들은 머잖아 자리를 비워줘야 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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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구역 상가 세입자 20여명은 지난 14일부터 ‘적절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3구역의 카페 ‘마리’를 점거해 농성중이다. 9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남편의 보상금과 퇴직금으로 분식집을 차린 김점희(42)씨는 “시행사에서 받은 보상금이라고는 10달치 월세인 1000만원뿐”이라고 했다. 처음 가게 문을 열 때 권리금에다 인테리어 비용까지 1억6000만원을 투자했지만 이제 김씨에게 남은 것은 월세 보증금 2000만원을 포함해 2600만원이 전부다. 강제 명도비용 400만원도 김씨가 부담해야 했다. 인근 가게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모퉁이 식당은 370만원, 23년 동안 명동을 지켰던 낙원화랑이 받은 보상금도 700만원이었다.
이들은 17일 중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구청과 서울시가 건설·금융자본과 함께 명동을 ‘제2의 용산’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며 항의했다. 실제로 명동 일대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용산이나 홍대 앞 두리반처럼 시행사와 세입자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은행과 기업은행, 대우건설 등이 지분을 투자한 시행사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은 명동 3구역 2797㎡에 25층, 4구역 2959㎡에 24층짜리 건물을 올리기 위해 재개발을 강행하고 있고, 세입자들은 ‘쥐꼬리 보상금’에 가게를 비워줄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이날 오전에는 농성중인 세입자들이 시행사 용역업체 직원의 수도관 차단 작업을 막다 몸싸움이 벌어져 양쪽 모두 부상을 입기도 했다.
세입자와 시행사의 갈등뿐 아니라, 세입자들을 도우려는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는 점에서도 명동은 용산, 두리반과 닮은꼴이다. 농성 531일 만에 시행사와 이주대책에 합의한 ‘두리반 투쟁’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시민단체는 속속 카페 마리를 찾고 있다. 연대하는 학생들은 매일 밤 5~6명씩 찾아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용역들에 맞서 상인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고 있다. 점거농성 중인 세입자 이재성(44)씨는 “학생들과 불침번을 서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세상이 그래도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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