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을 걸라더니…검찰권 강화 합의안에 서명”
일선 경찰 “노예계약”
1인시위·내부 비판글
일선 경찰 “노예계약”
1인시위·내부 비판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 뒤 경찰이 후폭풍에 휩싸였다. 수사권 조정 협상 업무를 담당해온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에서조차 조현오 경찰청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부 경찰들이 (합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반발한다”고 한 조 청장의 주장을 협상 실무진들이 정면 반박한 셈이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수사구조개혁팀의 황정인 경정은 지난 22일 저녁 경찰 내부통신망에 ‘6·20 합의의 과정, 그리고 나의 입장’이란 글을 올려 “국무총리실에서 애초 제시한 수사권 조정안보다 더 후퇴한 안에 경찰청장이 서명했다”며 “구성원들이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수사구조개혁팀 황정현 경감도 내부통신망에 ‘6월20일 경찰 수사권 관련 합의안의 문제점’이란 글을 올려 “이번 합의안은 오히려 검찰권을 강화하는 개악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수사구조개혁팀 소속 경정급 간부를 포함한 2명은 합의안 도출 하루 뒤인 지난 21일 “더이상 업무를 계속할 수 없다”며 지휘 라인에 전출을 요청하기도 했다.
22일 <한겨레>와 만난 황정인 경정은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기관간 견제와 균형을 찾기 위한 건설적 비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직을 걸고’ 수사권 조정에서 경찰의 입장을 관철하라던 청장이 독소조항이 가득한 조정안에 합의를 해주고 왔다”며 “그로 인해 비판의 화살을 내부로 향하게 한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황 경정은 “19일 국무총리실 마지막 조정회의가 결렬된 뒤 수사구조개혁팀은 사개특위 전체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은 조 청장이 수행자 없이 홀로 청와대로 갔고, 돌아와서 한 말이 ‘사인하고 왔다’였다”고 밝혔다. 황 경정은 “합의안 자체가 검찰 개혁의 효과는 없고, 검찰 권력을 공고히 하는 효과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의 수사 지휘 대상에서 내사를 빼기로 당사자들이 합의했다는 조 청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합의’란 법적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합의 당사자들이 언제까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법무부령의 제정 권한은 궁극적으로 법무부에 있고, 이에 따라 ‘경찰의 수사주체성’도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합의안이 나온 지 3일이 지났지만 일선 경찰들의 반발 기류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내부통신망에는 3일 동안 합의 내용을 비판하는 글이 200여건이나 올라왔다. 지난 21일에는 경찰청 청사 로비에서 서아무개 경위가 “합의내용에 문제가 있다”며 20여분 동안 1인시위를 했고, 22일에는 서울 지역의 일부 경찰 간부들이 “합의안의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는 취지로 모임을 열기도 했다.
경남지방경찰청 소속 한 경찰관이 ‘20일 합의안은 노예계약. 나는 반대한다’고 쓴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을 22일 내부통신망에 올리자 지지하는 경찰들의 호응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승준 박수진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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