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의 영장 없이 채취한 혈액은 음주운전 판단의 증거로서 인정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운전한 혐의(음주운전)로 기소된 김아무개(53)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의정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피고인의 동의도 없이 혈액을 채취하고 사후에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혈중알코올농도 감정을 의뢰해 획득한 증거는 형사소송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적법 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한 것이어서 증거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이를 유죄 증거로 삼아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2009년 7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넘어져 의식을 잃었고 119 구급차량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사고조사를 위해 병원에 온 경찰관은 딸의 동의를 얻은 후 의료진을 시켜 의식이 없는 김씨의 혈액을 채취하게 했다. 혈액을 감정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164%로 나오자 경찰은 김씨를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경찰이 채취한 혈액은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음주운전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음에도 운전자가 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며 유죄로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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