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모임 “동·리 이름은 문화 소산…실정 안맞고 경제효과 부풀려”
도로 이름과 건물 이름을 기준으로 한 새 주소(도로명 주소) 시행이 임박하면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9일 새 도로명 주소를 일제히 고시한다. 2013년 말까지는 기존의 주소와 새 도로명 주소를 병행해 쓰지만, 2014년부터는 새 도로명 주소만 사용해야 한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와 우리글진흥원, 조계종 문화결사위원회 등이 결성한 우리땅이름지키기 시민모임은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열어, 새 도로명 주소가 우리 실정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적 효과도 지나치게 과대 포장됐다며 전면 폐기를 촉구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새 도로명주소법 시행으로 사라지게 될 4만여개의 동·리 이름은 역사와 자연환경이 배어 있는 우리 문화의 소산”이라며 “우리 국민은 자기 고향과 동네를 잃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도로명 주소 도입을 처음 논의하던 1996년과 달리 지금은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길찾기가 일상화됐다”며 “길찾기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명분이 크게 약해졌을 뿐 아니라 계획도시가 아닌 우리 실정에 도로명 주소가 맞는지도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양영채 우리글진흥원 사무총장은 “정부가 도로명 주소 도입의 기대효과로 추정한 연 3조4천억원 중 길찾기 비용이 3조1천억원으로 90% 이상을 차지한다”며 “문의전화 및 문의응답에 들어간 비용과 방문자가 헤매는 데 들어간 시간비용을 각각 1조원 이상으로 최대한 부풀려 잡은 엉터리 계산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00년 동안 사용하던 주소체계 변경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진행했고, 자료와 논리가 과장됐다”며 △지번의 연속성 결여 △행정동과 법정동의 이원화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불교계는 도로명 주소 도입으로 일부 사찰 이름이 사라지게 됐다며, 새 주소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찰 이름 대신 ‘지봉로 19길’이라는 주소를 쓰게 된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보문사 스님들은 지난달 29일부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독교계도 일부 교회의 새 도로명 주소에 사찰 이름이 표기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