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법으론 건축 가능해도 지자체 재량으로 불허 가능”
유아무개(53)씨는 지난 2009년 5월 강원도 홍천에 단독주택 6채를 짓기로 했다. 팔봉산에서 1.3㎞, 홍천강에서 불과 10m 거리에 있는 임야 1800여㎡에 산지 전용 허가를 포함한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산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위치였지만, 절개지가 무너질 것을 우려해 82m 높이의 옹벽을 쌓고 부지 정비작업까지 마쳤다.
그러나 홍천군은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홍천군은 ‘150년 만에 한번씩 찾아오는 최대 홍수위보다 저지대에 있어 침수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관계 법령의 건축 제한 사유에 ‘홍수 또는 침수’라는 내용이 없고, 근처에 이미 펜션 등이 들어서 있던 터라 유씨는 군청의 처분에 승복할 수 없었다. 결국 “150년 빈도의 홍수위를 기준으로 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며 소송을 냈다.
실제 산지관리법은 ‘토사의 유출·붕괴 등 재해 발생 우려가 없을 것’을 산지 전용의 제한 기준 가운데 하나로 하고, 그 시행령에서는 ‘산사태 위험지 판정기준표상의 위험 요인에 따라 산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정되지 않을 것’을 세부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법 춘천행정부(재판장 김인겸)는 유씨가 홍천군수를 상대로 낸 건축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최근 기상 이변이 잦아지는 추세를 고려해, 재해 발생의 우려가 있을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산지 전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재량권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산지 전용은 산지 관리 목적에 어긋나지 않을 때 예외적으로 허가하는 것이므로 관할관청의 재량행위”라며 “법령상 산지 전용이 제한된 곳이 아니라 하더라도, 공익상 필요한 경우에는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재해 발생 우려’라는 산지 전용 제한 사유는 시행령에 규정된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상 이변이 잦아지는 최근 추세에 비춰볼 때 집중호우 및 지형적 요인에 의한 침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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