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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교사 인권마저 내팽개친 교육청의 ‘해직 통보’ / 정해숙

등록 2011-07-31 19:58

1989년 7월19일 광주시교육청에서 열린 교원 징계위원회에 출석한 필자는 진술도 하지 못한 채 강제로 끌려나오다 2층 계단에서 굴러 목을 비롯한 다발성 타박상을 입는 바람에 남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8월3일 끝내 해직 통보를 받았다.
1989년 7월19일 광주시교육청에서 열린 교원 징계위원회에 출석한 필자는 진술도 하지 못한 채 강제로 끌려나오다 2층 계단에서 굴러 목을 비롯한 다발성 타박상을 입는 바람에 남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8월3일 끝내 해직 통보를 받았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55
1989년 7월19일 광주시교육청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출석한 3명의 전교조 조합원 교사 가운데 내가 맨 먼저 회의실로 들어섰다. 다른 두 선생님은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실에는 징계위원 9명과 기록 담당 직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징계위원장이 “징계위 전에 기피신청서를 내셨는데 그것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판결이 있어 징계위원회를 열게 되었고, 오늘이 2차 징계위”라고 설명했다. 나는 “1차 징계위를 열었다니 1차 때 회의록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의 내용은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내가 당사자인데 왜 보여줄 수 없느냐?” “보여줄 수 없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랑이가 한참 동안 이어지던 끝에 나는 다시 ‘보여줄 수 없다면 읽어주기라도 해 달라’고 했으나 위원장은 끝내 거절했다.

“보여주거나 내용을 읽어주기 전까지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보여주십시오.” 나 역시 단호하게 버텼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위원장은 ‘왜 이렇게 징계위를 방해하느냐’며 되레 화를 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서무과 출신 한 징계위원은 “소문에는 좋은 사람이라더니 오늘 보니까 아니네”라며 엉뚱한 토를 달기도 했다.

내가 전혀 뜻을 굽히지 않을 듯하자 징계위원장은 잠시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진행이 이렇게 안 되면 서로 곤란하지 않습니까. 진행이 순조롭게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에 올 때는 징계위원들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 징계위원님들도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오신 것 알고 있습니다. 2차 회의라 하니 1차 회의 내용 보여 달라 했고 보여주는 것은 안 된다 해서 읽어 달라 한 것인데 이런 내 요구가 무리한 것은 아니잖아요. 요구한 것 들어주십시오.” 또 한차례 공방을 되풀이한 뒤 위원장은 ‘잠깐 쉬자’며 다시 나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뒷문이 열리면서 여직원 5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엔 그 가운데 한 명이 내 앞으로 오더니 ‘나가자’고 했다. “무슨 소리야. 아직 안 끝났는데?” “끝났다는데요!!!” 그 여직원의 말과 태도가 몹시 거칠었다. 내 표정이 굳어지니 그는 내게 달려들었다. “이거 놔? 너희들이 지금 교육청 백골단들이야?” 이런 와중에도 징계위원들 사이에서는 ‘킥킥’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책상 위 물컵을 들어 물을 끼얹어버렸다. 순간 기록하던 직원이 내 앞의 책상을 빼내자 다른 여직원들이 달려들어 양쪽에서 나를 잡고, 뒤에서는 밀면서 끌고 나갔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문 여는 소리와 여직원들의 빠른 발걸음 소리가 긴 복도에 울리며 긴장감을 자아냈다. 대기실에 있던 윤광장·김화진 선생님이 놀라서 뛰어나왔다. “이거 뭣하는 짓들이야?” 윤광장 선생님의 고함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여직원들은 사정없이 나를 끌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탁탁탁’ 여직원들의 구두 소리만이 긴박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그런데 두세 계단을 내려갔을 즈음 내 오른쪽 팔을 잡고 있던 여직원이 나를 놓쳐버렸다. 내가 몸부림을 치는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보조가 안 맞은 것이다. 한쪽이 팔을 놓치자 다른쪽 여직원도 놓쳐버렸다. 양쪽에서 동시에 팔을 놓아버리자 나는 거꾸로인 채로 떨어져 사정없이 계단 밑으로 굴렀다. 그때 지은 지 얼마 안 된 교육청 건물에는 계단이 무척 길었다. 그나마 중간에 참이 있었다. 어떻게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내 눈으로 보였다. 또 ‘내가 밑으로 떨어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는 아래로, 다리는 위로 향한 상태에서 계단 하나하나에 머리를 ‘탁탁탁’ 부딪히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하필 치마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구른 나는 계단 중간 참의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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