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인 오한숙희(서류 든 이)씨가 3일 오후 아현뉴타운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을 앞둔 서울 마포구 염리동 염리2구역을 돌아다니며 조합원들을 만나 관리처분 계획안 반대 확인서를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수억대 추가부담…폐쇄적 조합에 구청은 나몰라라
늘어난 부담금 설명 없고 조합원 명단조차 비공개
원주민 내모는 재개발 맞서 ‘권리찾기’ 버거운 싸움
늘어난 부담금 설명 없고 조합원 명단조차 비공개
원주민 내모는 재개발 맞서 ‘권리찾기’ 버거운 싸움
지난 2일 저녁, 아현 뉴타운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을 앞둔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염리2구역 조합원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만난 여성학자 오한숙희(52)씨는 잰걸음으로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골목에서 그를 마주친 주민들은 “고생한다”고 말을 건넸고, 그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재개발 절차에 맞서 우리의 권리를 찾자”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성학 강의와 방송 출연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오씨는 최근 자신의 동네 재개발 문제에 온 정신을 쏟고 있다.
강단과 방송에서 사회 현안을 시원스레 짚어내는 그였지만,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재개발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다. “조합에서 두꺼운 책자를 보내왔지만 제약회사 설명서 같은 어려운 전문용어가 깨알같이 적혀 있다 보니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동네 재개발에 대해 별생각 없이 지내던 그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것은 지난 6월 관리처분계획 공람을 보고 나서다.
그는 “조합 쪽에서는 사업비가 1720억원으로 추가 부담이 거의 없이 500여명의 조합원이 새집에 입주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민 동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애초 조합 쪽의 설명과 달리 추가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오씨는 “사업비가 1000억원 가까이 증가했고 이 때문에 주민 한 가구당 약 2억5000만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했다. (추가 부담 때문에) 평수를 줄이거나 입주를 포기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오씨는 지난 6월 이후 조합과 구청을 수시로 오가며 재개발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조합에서 고용한 정비업체와 홍보요원들이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조합원들에게 서면동의서를 받아가고 있어요. 재개발에 무조건 반대하자는 게 아니라, 토론을 통해 문제가 있는 것을 바꾸고 조합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선 거죠.” 하지만 조합과 구청 쪽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는 “현행 정책상 용적률을 20% 올려 추가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결국 조합의 폐쇄성과 구청의 소극적 태도에 막혀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합에서는 사업비 변경에 대해서도 시원스럽게 설명하지 않더라고요. 구청은 ‘주민 대 주민의 일’이라며 나서지 않고요.”
이에 대해 조합의 한 임원은 “2006년 동의를 받을 때는 가계약 상태여서 철거업체 등 계약이 안된 상태라 기타 비용 산정이 안 됐고, 올해 본계약을 하며 기타 업체 계약 비용과 5년 동안의 물가상승률도 적용했기 때문에 사업비가 늘어난 것이다”며 “평당 분양가가 서울의 다른 지역과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반대하는 분들이 용적률을 상향하면 추가 부담이 준다고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큰 실익이 없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며 “조합에서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드리고 있는데 반대하는 분들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은 오는 11일 관리처분계획총회를 열어 사업계획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오씨는 “관리처분계획총회를 일단 미루고 민주적 과정을 통해 조합 관계자들과 입장이 다른 조합원 사이의 시각 차이를 좁혀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조합원 180여명으로부터 관리처분계획 반대 확인서를 받은 상태다. “다들 ‘관행’이라고 하지만 조합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자는 건데 이렇게 진행되면 공정한 게 아니잖아요.”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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