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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모 고통·세상 공포가 ‘마음의 병’으로 똬리

등록 2011-08-18 21:25수정 2011-08-19 16:54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이 지난 7월1일 경기 김포 영화사 주변 숲길을 함께 걷고 있다. 김경호 <한겨레21> 기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이 지난 7월1일 경기 김포 영화사 주변 숲길을 함께 걷고 있다. 김경호 <한겨레21> 기자
[쌍용차 정리해고 그후 2년]
■ 깊은 상처에 신음하는 해고자 아이들

견디기 힘든 폭력 목격하고
분노·좌절한 부모 겪으면서
폭력성 드러내거나 가출도

실태조사 98명중 26명 ‘우려’
사회적 심리치유 지원 전무
불행의 악순환 가능성 높아

열두살 하나(가명)가 살면서 가장 슬펐던 때는 ‘아빠가 감옥 간 날’이다. 2년 전 쌍용자동차 조합원이었던 하나 아빠는 77일간의 ‘옥쇄파업’ 이후 구속됐다. 그렇게 슬픈 날이었는데, 하나는 울지 않았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아빠에게 그저 씽긋 웃어주기만 했다. 변호사를 만나느라 분주하던 엄마에게도 아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최근에야 아빠의 일로 아이가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알게 됐다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파업 당시 일곱살이던 은수(가명)는 하루종일 유치원에 있었다. 아빠는 공장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바빴다. 파업이 끝난 뒤 은수는 종종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우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아빠·엄마가 사라져버리는 악몽을 꾼다.

준우(가명) 엄마는 해고 사태 때 항의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하려고 삼보일배를 하다 방패를 든 전경들에게 순식간에 둘러싸였다. 밀려오는 전경들을 피해 누군가가 네살짜리 준우를 안아 들었다. 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들어간 준우는 경찰과 싸우는 놀이를 하고, 엄마·아빠를 걱정하는 말을 자주 한다.

‘조립ㄱ팀 파이널과 ㄴ직’ 13명의 오늘
‘조립ㄱ팀 파이널과 ㄴ직’ 13명의 오늘

쌍용차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 노동자 2000여명에게는 4000여명의 자녀가 있다. 부모의 고통은 곧 아이들의 고통이 됐다. 해고노동자 자녀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진행중인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는 “98명 가운데 마음의 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 26명이나 됐다”며 “보통은 100명 가운데 2~3명만 이런 징후를 보인다”고 말했다.

파업 당시 평택공장 앞에는 엄마 등에 업혀 아빠를 보러 온 취학전 아이들이 늘 있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폭력을 목격한 아이들 마음속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았다. 지난 2년 동안 아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적 상실감에 시달리는 부모를 보면서 자라났다. 부부간 불화·자살 등으로 인한 가족 공동체 붕괴도 심각하다. 파업 전후 일자리를 잃은 조합원과 가족 중 세상을 등진 이는 15명이다.

이들의 자녀는 하루아침에 엄마나 아빠, 또는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 아이들의 상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군말없이 동생을 돌보는 등 지나치게 의젓한 어린아이들이 많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중에는 가출을 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한 경우도 있다.

파업 참여 뒤 징계 해고당한 김인수(가명·41)씨는 분노를 조절하기가 힘들다. 재취업도 쉽지 않고 생활고가 이어지자 자기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험한 행동을 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집엔 긴장감이 찾아들었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곧잘 하던 열네살 아들 형수(가명)의 방황도 시작됐다.

아들은 누군가의 시비를 견뎌내지 못했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했다. 잘못을 다그치는 아빠에게 형수는 ‘아버지도 (경찰서에) 가지 않았느냐’고 대들었다. 아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모들은 쌍용차 파업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우려한다. 이아무개(37)씨는 “파업 때 한 아이가 뉴스에 나왔는데 같은 반 애들이 그걸 보고 놀려 고통을 받았었다”며 “우리 아이도 그런 일을 겪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자녀들의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심리치유 지원은 전무하다. 국가의 외면 속에 정신과 의사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와 이명수 대표가 직접 나섰다. 이들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치유활동을 위해 다음달 평택에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열기로 했다.

와락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치유공간이기도 하다. 정혜신 대표는 “아이들 회복력이 어른보다 낫기 때문에 부모가 치유되면 아이들의 상처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 장기투쟁 노동자들 보면

가족과 불화·경제난 공통적…
작은 사업장은 관심 못받아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케이티(KT) 앞에는 발레오공조코리아·콜트-콜텍·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모였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계기로 꾸려진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투쟁단 ‘광화문의 소금꽃밭’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정리해고 뒤 쌍용자동차차 노동자들이 겪고있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과의 불화 등의 문제는 2~3년씩 싸움을 해온 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회사의 정리해고와 직장폐쇄에 맞서 2년째 싸우고 있는 금속노조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박상수 사무장은 “102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70명이 남아 있다”며 “투쟁을 그만둔 이들에겐 경제적인 문제와 노동조합을 부정적으로 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남아있는 조합원들은 공공근로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데다가, 농성 때문에 받게 되는 경찰의 출석 요구서에 위축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기타 제조회사 콜트-콜텍의 해고에 맞서 5년째 싸우고 있는 방종운 콜트지회장은 “해고 무효 소송, 업무방해 형사 고소 등 회사와 걸려있는 소송만 44건”이라며 “1억원의 소송비용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기약없는 재판 결과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등 상대적으로 큰 사업장의 정리해고 문제에만 사회적 관심이 주로 쏠리다보니, 이들은 외로움과 무력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방 지회장은 “우리도 한진중공업 사례와 비슷한 경우”라며 “싸움 초기 우리에게 쏠린 관심이 언제부터인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라”고 말했다. 박 사무장도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과연 이길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 때 가장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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