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이진한 공안1부장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조선 혁명을 목표로 움직였다는 반국가단체 ‘왕재산’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직 체계도를 설명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왕재산 사건’ 수사발표 의문
검찰, 북한 지령문 등 1600건 압수물 분석
“주요시설 폭파 음모·선거에도 개입” 밝혀
군사정보·위성사진도 알려졌거나 구입 가능
검찰, 북한 지령문 등 1600건 압수물 분석
“주요시설 폭파 음모·선거에도 개입” 밝혀
군사정보·위성사진도 알려졌거나 구입 가능
검찰은 25일 ‘왕재산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피의자들 전원이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압수물을 통해 실체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런 자신감의 근거로 광범위한 ‘물증’을 제시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등을 통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인 225국이 왕재산에 보낸 지령문, 왕재산이 북한에 보낸 보고문 등 모두 1600여건의 증거물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여기엔 왕재산 조직원들의 충성서약서(25건), 스테가노그래피(비밀 메시지를 평범한 문건으로 위장하는 최첨단 암호화 프로그램) 230건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지령과 보고 내용 등을 종합해 보면, 왕재산은 주요 시설 폭파를 준비하거나 야권통합을 주도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왕재산 조직원들의 면면이나 규모, 활동 반경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이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할 실질적인 해악’을 끼쳤는지는 의문이다.
검찰은 “왕재산이 인천 지역을 혁명의 전략적 거점화하기 위해 주요시설 및 군부대 등을 장악하거나 폭파할 음모를 꾸미는 등 국가변란을 획책하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소속 구청장을 배출한 인천의 남동구와 동구 등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이들 지역의 행정기관과 방송국 등을 유사시에 장악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활동상은 문건의 내용일 뿐이다. 검찰이 밝혀낸 왕재산 조직원은 구속된 5명과 불구속 수사 중인 5명, 합쳐서 10명이다. 대북 보고문에는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은 200여명”이라고 밝혔지만,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설사 200명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비무장 상태로 군부대·행정기관·방송국을 장악한다는 건 ‘공상’에 가깝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북한 지령문에 반미투쟁을 위해 어디에 가라고 하면 실제 현장에 간 사진이 있다”며 “보고 내용이 과장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조직은 야권통합에도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북한은 지난 5월 “○○○당의 통합 반대세력은 ○○노총 등이 내외협공을 들이대여 통합에로 몰아세우고, 통합이 파탄될 경우 ○○○당을 고사시키라”, “○○○○당은 이라크 파병 주장 등에 대해 공개 반성할 경우 통합에 참여시키라”는 지령을 타전했다고 한다. 이에 왕재산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직후 “조직원들이 열심히 투쟁해서 ○○당 후보 중 기왕의 포섭대상인 ○○○을 시의원으로, ○○○을 구의원으로 당선시켰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권통합은 각 당의 노선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다. 북한이 개입하려고 할 경우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나고, 왕재산 같은 소규모 조직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규모다.
이들이 탐지해 넘겼다는 ‘군사정보’도 공개돼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미군 야전교범은 전미과학자협회(FAS) 누리집에서 입수할 수 있었고, 국내 위성사진집도 2005년 수집 당시 15만원을 주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 알려진 내용이나 입수가 손쉬운 것들도 “누설되는 경우 반국가단체에는 이익이 되고 대한민국에는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성이 명백하다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간주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이번 사건과 같은 수사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는 ‘수사 보안’을 이유로 피의자의 방어권이 제한되면서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수사에 방해가 될 염려가 있을 때에는 서류 열람 제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판사는 이에 따라 열람을 제한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총책 김아무개씨의 변호인은, 구속영장 내용을 열람하지 못하고 실질 심사에 들어가야 했다. 김씨 변호인의 항의로 영장 열람이 뒤늦게 이뤄졌고 이튿날 실질심사가 다시 열리는 촌극이 연출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검찰·법원의 영장 열람 불허 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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