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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 임금 인상말라” 서명받는 경비원들

등록 2011-09-01 20:52수정 2011-09-02 08:57

‘최저임금 100% 적용’ 씁쓸한 풍경
입주자 요구에 마지못한 동참
“해고가 두려운데 어떡하겠나”
“관리사무소에서 (서명) 받아 달라니까 그냥 했어요. 치사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나.”

지난 31일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강동만(가명·63)씨는 어둠이 깔린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난 7월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서명용지에는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 100% 지급 규정을 적용하면 관리비가 올라가므로 100% 적용을 유예하거나, 아예 최저임금법 적용 예외를 요구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비원이 “경비원 임금 인상을 막자”는 서명을 받으러 다닌 셈이다.

내년부터 아파트 경비원 같은 ‘감시·단속직 노동자’(감단직 노동자)들도 최저임금을 적용받도록 제도가 바뀌자, 전국 곳곳의 아파트 단지에서 이런 씁쓸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100%를 줄 경우, 현재 평균 110만~120만원을 받는 경비원의 월 급여는 평균 20만~30만원가량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관리비 인상을 우려한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전아연)가 대응에 나섰고, 일자리를 잃을까봐 경비원들이 “임금 인상을 하지 말라”는 서명 운동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전아연 관계자는 “경비원에게 최저임금 100% 지급 규정을 적용하면 관리비가 20%, 가구당 1만~2만원씩 늘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난리가 날 수도 있다”며 “근로조건 개선도 중요하지만 65살 이상 고령층이 대부분인 경비원들이 거리로 내몰릴 텐데 최저임금 100%를 적용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0만명 이상 서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비원들은 2006년까지 최저임금 적용을 전혀 받지 못하다가,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2007년에는 최저임금의 70%, 2008년부터는 최저임금의 80%를 받아왔다. 대신 경비원들은 임금 비용을 아끼려는 용역업체와 일부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해고 위협’의 볼모가 됐다. 일상적인 ‘고용불안’이란 족쇄를 차게 된 것이다.

15년째 경비원 생활을 한 최경규(가명·66)씨는 “임금이 오르면 나이든 사람부터 당연히 잘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0만원짜리 월세방에 혼자 사는데 이것저것 떼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어 겨우 지낸다”며 “경비원들이 모이면 최저임금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임금 오르는 것은 당연히 반기지만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끝을 흐렸다. 지난해부터 경비원 일을 한 송창원(가명·64)씨는 “우리 같은 60대 이상도 제대로 먹고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얼마나 된다고 월급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2007년 이후 임금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우려해 상당수 아파트들이 경비원 수를 줄이거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등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대신 경비원들은 거의 대부분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등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며 세 동을 혼자 관리한다는 아파트 경비원 김규식(가명·60)씨는 “경비원을 하바리로 알지만 여기 셔츠의 소금기를 봐라. 아침에 낫 들고 풀 베서 그렇다. 돈 백만원 받고 겨우 버티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상(65)씨도 “시시티브이가 설치돼 경비원이 20~30% 줄었는데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여전하다”며 “오히려 관리사무소에 있는 시시티브이가 우리 근무 자세까지 감시한다”고 전했다.

경비원들은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씨는 “법 바뀐다고 우리 고용이 저절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계약서 새로 쓰자고 말할 처지도 아니고 그만두라면 그만둬야 된다”며 “정부가 아파트든 용역회사에 압력을 넣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아파트 입주자 단체에서 청원을 넣어 현재 검토중”이라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근로조건 개선과 고용안정을 이루기 위해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고용부는 사실상 최저임금 100% 유예나, 단계적 적용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실 관계자는 “관리비가 조금 오르더라도 최저임금 100%를 적용해야 한다는 아파트 주민들도 있다”며 “노동 강도가 높은 현재의 24시간 맞교대를 바꾸고 고용유지 지원금, 교대제 전환 지원금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고용안정과 최저임금 보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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