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평화의 비행기’와 ‘평화버스’를 타고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집결한 시민들이 3일 저녁 강정마을 체육공원에서 열린 평화콘서트 ‘놀자, 놀자, 강정 놀자’에 참가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다. 제주/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평화의 비행기 동승기
대추리 주민·용산 희생자 가족·한진중 해고자…
“구럼비 지키자” 한목소리…주민들 “힘 실어줘 감사”
대추리 주민·용산 희생자 가족·한진중 해고자…
“구럼비 지키자” 한목소리…주민들 “힘 실어줘 감사”
경기도 부천에서 온 박상일(17)군은 신이 난 듯했다. 3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1시간 남짓의 비행 동안 그는 내내 웃는 표정이었다. 발달장애 1급인 박군은 부정확한 발음으로 “간다”라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어머니 이연숙(46)씨는 “(아들이) 제주도의 환경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가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해군기지 건설로 쫓겨나게 된 강정마을 주민들처럼 저희도 국책사업의 피해자”라고 했다. 박군이 다니는 부천시의 ‘큰나무학교’는 지난해 10월 학교 땅이 보금자리 지구에 포함돼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큰나무학교는 발달장애 학생 30명이 다니는 대안학교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학교부지를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개발은 사람들을 쫓아내기만 해요. 때로는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건가요?”
이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때 일반 학교를 다녔는데, 소풍·운동회·수학여행같이 아이가 잘 적응하지 못하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제주도를 함께 찾곤 했다”며 “일부에서 외부세력 운운하는데 국민 모두 즐겨 찾는 환경과 공동체를 지키자는 게 왜 지역만의 문제냐”고 물었다.
이날 낮 200여명의 참가자를 태운 ‘평화의 비행기’ 2대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트위터와 언론보도를 보고 모인 참가자들의 손에는 “해군기지 시러, 구럼비가 좋아”, “할망물, 구럼비 그대로 두는 것이 평화!”라는 글이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제주도에 도착한 이들은 강정마을로 향하는 올레 7코스 길을 걷고, 강정천 운동장에서 열린 평화콘서트에 참여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희망버스’처럼 주말을 맞아 친구, 가족과 함께 온 참가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올레길을 걷던 이들은 해군이 설치한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강정마을과 곳곳에 배치된 경찰을 보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경기도 안양에서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데리고 온 이영경(52)씨는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을 내고 아들, 남편과 함께 왔다”며 “좋은 경관 보려고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못 보니 답답하다. 여기가 고향인 사람은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경찰과 군인은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오히려 우리를 쫓아내려 하니 이해가 안 간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온 임아무개(51)씨는 “아름다운 강정마을 해안과 주민들을 높은 벽으로 막은 것을 보니 지금 정부의 소통방식이 떠오른다”며 “인간과 환경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평화비행기에는 미군기지 건설로 마을에서 쫓겨났던 평택 대추리 주민들, 용산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도 몸을 실었다. 대추리 주민들은 “강정마을도 대추리와 똑같은 사정”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마을 주민 김봉규(47)씨는 “전국에서 찾아주신 분들이 강정마을에 힘을 주셔서 정말 고맙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제주/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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