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 타고 부산으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씨의 장례를 주관하고 있는 장례위원들이 6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고인의 영정을 들고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으로 가기 위해 ’어머니 희망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빈소 표정
`어머니와의 기억’ 떠올리며
삼삼오오 둘러앉아 슬픔 달래
“진보통합 선물 못드려 죄인된 심정”
`어머니와의 기억’ 떠올리며
삼삼오오 둘러앉아 슬픔 달래
“진보통합 선물 못드려 죄인된 심정”
“동일방직 사태 때 어머니께서 같이 싸워주셔서 든든했어요. 어머니는 정보부에서 집에 놓고 가는 돈도 안 받으시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장례식장에서 버려진 옷을 수거해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셨죠.” 1978년 동일방직 사태 당시 노조지부장이었던 이총각(65·여)씨는 6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이소선씨의 빈소에서 이소선씨를 기억하며 추억에 젖어들었다.
6일 이소선씨의 빈소에 삼삼오오 둘러 앉은 조문객들은 이소선 어머니를 기억하며 슬픔을 달랬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의원은 “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투쟁방향을 두고 대학생들끼리 논쟁이 벌어졌었다”며 “어머니께서 단상에 올라 ‘독재정권에 맞서 싸워야지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된다’고 한마디 하시자 상황이 정리됐었다”고 말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85년에 서울 수유리에서 이소선 어머니의 옆집에 살았는데 어머니가 반찬을 해다주시며 아들처럼 챙겨주셨다”면서 “큰 기둥을 잃었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생전에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동자가 하나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오셨다”며 “마지막 가시는 길에 진보통합의 큰 선물을 드리지 못해 죄인된 심정”이라고 침통해 했다.
7일 영결식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한 가수 장사익씨는 “생전에 두어번 밖에 뵙지 못했지만 옳은 길 가시는 그 모습이 존경스러웠다”며 “세상에 기준이 없어져 갈팡질팡할 때 큰 어른이 계셔야 하는데”라며 이소선씨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빈소를 찾은 시민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이소선씨를 추모했다. 대학생 서원용(24)씨는 “전태일 평전을 읽고 세상에 처음 눈을 뜨게 됐다”면서 “전태일 열사의 부탁을 지키며 살아온 어머니처럼 ‘모두가 하나돼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한서정(49)씨는 “어머니가 생전에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집회에 나오시는 걸 보면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아직도 어머니가 거리로 나오셔야 하는 시대인가라는 착잡한 마음이 교차했다”면서 “기성세대로서 반성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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