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저녁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가을 음악회’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조합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방해고 반대투쟁 끝 계약직 됐지만…
문화부 “단체행동 등 말라” 재계약 직전 확약서 압박
단원들 “상임화 약속 깨나” 거리 무대로 ‘음악회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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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 “상임화 약속 깨나” 거리 무대로 ‘음악회 투쟁’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8일 저녁, 서울역 광장에는 아름다운 합창이 울려 퍼졌다. 콘서트를 알리는 포스터도 붙지 않았고, 입장권을 받는 손길 하나도 없이 콘서트가 열렸다. 이 ‘가을음악회’의 무대는 서울역 광장 아스팔트 위. 사람들은 그 옆에 내걸린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제자리로’라는 펼침막을 보고서야 그곳이 무대임을 알아차렸다.
음악회는 엠피3(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시작됐다. 낡은 스피커가 삑삑대는 바람에 스피커의 위치를 맞추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계단 위쪽에서 음향을 점검하던 조남은(39) 단원은 “오늘 나온 사람들은 알토 없이, 소프라노가 셋, 베이스가 둘, 테너가 여섯”이라며 “합창은 파트간 조화가 중요한데, 인원수가 안 맞아 좋은 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1시간 남짓 이뤄진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의 합창은 추석을 맞아 일찍 고향에 내려가는 귀성객들과 퇴근길 시민 100여명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의 ‘축배의 노래’가 나올 때는 모두가 어깨를 들썩였고, 서석호(33) 단원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부를 때는 환호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 서씨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얼른 무대로 돌아가 시민들에게 더 나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오케스트라에 맞춰 노래 부르던 이들이 길거리 공연에 나선 까닭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국립오페라단 산하 오페라합창단은 2002년에 창설됐다가 2009년 공식 직제에 없는 조직이라는 이유로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단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임시로 나라오페라합창단을 만들어 계약직으로 채용했지만, 지난 4월 재계약을 앞두고는 ‘2012년 4월 지원이 종료된 뒤 어떠한 단체행동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확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고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문대균(34)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 지부장은 “3년 전 상임으로 해주겠다던 문화부가 태도를 바꿔 계약직으로 만들더니 1년 뒤에 또다시 거리로 내몰면서 단체행동도 금지하려고 한다”며 “이제 곧 추석인데 아직까지 집안에서 계약해지 사실을 알지 못해 고향에 못 내려가는 단원들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애초 30명이던 단원은 이제 12명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일주일에 한 차례씩 문화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오페라합창 50여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이들 조합원은 교회나 다른 오페라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그나마 이들의 버팀목이 돼주던 한달 80만원 정도의 실업수당도 9월이 지나면 거의 대부분 받을 수 없게 된다.
문 지부장은 “전국에 100여개의 오페라단이 있고 오페라하우스도 수십곳이지만 오페라 공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정규 오페라합창단은 한곳도 없다”며 “국민들의 더 나은 문화 혜택을 위해서라도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상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사진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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