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에서 고용한 용역 직원들이 지난 8월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도시환경정비 3구역 내 카페 마리에서 적절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중이던 세입자들을 몰아낸 채 농성장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3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 8일 타결됐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동운동 탄압·재개발 열풍타고 용역업체 활개
3년간 노동자 3832명 기소…용역은 116명 그쳐
철거민·시민단체들 “공권력은 자본가 편” 비판
3년간 노동자 3832명 기소…용역은 116명 그쳐
철거민·시민단체들 “공권력은 자본가 편” 비판
노조 파업이나 재개발 현장에서 ‘용역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과 뉴타운 개발 후유증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커지면서 ‘분쟁해결 수요’가 늘자, 용역업체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용역폭력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찰의 소극적인 관리 감독이 용역폭력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 첨단장비 갖추고 인터넷에 광고까지 용역업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최근 들어 사업주와 직접 계약을 맺는 대형 업체는 ‘분쟁해결 전문 경비업체’를 표방하며 인터넷 등에 광고까지 하고 있다. 대구의 ㅌ경비업체는 “첨단 방어 장비, 복장 등을 갖춰 직장폐쇄, 구조조정, 노사분쟁에 철통같은 방어선을 구축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업체들은 1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업체들은 대형 업체에 개별고용되거나 하도급 계약을 맺고 분쟁 현장에서 노동자와 철거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첨병’ 구실을 한다. 한 경비업체 관계자는 “‘경호팀’이라고 불리는 소규모 경비업체들은 경비업·철거업·근로자파견업 등 사업자 등록을 해놓고, 대규모 현장이 있을 때마다 대형 업체에 개별고용되거나 하도급 계약을 맺고서 투입된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용역계약을 맺은 현장에서 경비원이 폭력을 저지르면 경비업법에 따라 가중처벌될 것을 우려해 개별고용된 척 계약을 하기도 한다. 경비업체인 씨제이시큐리티도 용역경비원들이 유성기업에 직접 고용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 수사 과정에서 경비업체로 계약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 용역폭력 피해자에게 가혹한 경찰 이렇게 전문화된 용역업체들은 분쟁 현장 곳곳에서 과도한 폭력을 휘둘러 물의를 빚고 있지만, 경찰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 9일 새벽 서울 명동 2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업체 직원 수십명에게 떠밀려 다친 세입자 이아무개(52·여)씨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경찰이 119를 불러줬다고 하더라. 경찰이면 내가 용역들에게 내동댕이쳐질 때 말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분쟁 현장에서 발생한 폭력사건 수사에서도 용역업체 직원들보다 노동자·철거민을 가혹하게 대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장세환 민주당 의원이 19일 공개한 ‘최근 3년간 노동자·철거민, 시설주·용역업체에 대한 불법행위 수사결과 분석 자료’를 보면, 입건된 노동자·철거민 4197명 가운데 3832명(91.3%)이 기소됐지만, 용역업체 직원 등 시설주 쪽에 고용됐다 입건된 288명 가운데 기소된 사람은 116명(39.2%)에 불과했다. 장 의원은 “공권력이 자본에 고용된 자들에게는 관대하고 힘없는 노동자·철거민들에게는 냉정하다는 증거”라며 “이런 상황에서 법이 없어서 용역깡패들을 단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찰의 변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 용역폭력 막기에 미흡한 경찰 대책 용역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경찰이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 의원이 공개한 경찰청의 ‘집단민원현장 배치 경비원 및 용역폭력 방지대책’과 ‘정동영 의원이 발의한 경비업법 일부 개정안에 대한 경찰청 검토 의견’을 종합하면, 경찰은 “용역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돼 선제적 관리의 필요성이 증대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용역업체들이 ‘경비업무’를 수행해야만 경비업법에 의한 처벌이 가능하다”며 “철거업·근로자파견업 등의 불법행위 방지를 위한 ‘용역폭력 방지 등에 관한 특별법’(가칭)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경찰의 고유 업무인 치안 유지와 범죄수사 차원에서 용역폭력에 대처하는 대신, 행정적인 감독 대책만 제시한 것이다.
경찰은 경비원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경찰관의 개입을 의무화한 정동영 의원의 개정안 제24조를 두고도 “타 법과의 형평성 및 법체계의 타당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기존 법을 통해 경비업체 및 경비원에 대한 사전 행정통제는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는 “사전 행정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충돌 현장에서 경찰관이 개입하지 않아 용역폭력이 발생한 것”이라며 “문제의 본질인 폭력을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개정안 4조의 시설주가 무허가 경비업자에게 용역경비를 의뢰할 경우 시설주도 처벌하도록 한 규정과, 개정안 26조의 시설주가 고용한 경비업체가 제3자에게 손해를 가했을 경우, 시설주도 배상하도록 한 규정에 대해서도 경찰은 “시설주의 의사와 무관하게 시설주에게 경비원의 불법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우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의견을 폈다. 이에 대해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용역폭력은 근본적으로 철거현장 사업시행과정, 노사분규과정에서 시설주와의 직접적 인과 관계 없이 벌어질 수 없다”며 “시설주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만, 법망을 회피하면서 폭력과 탈법을 저지르는 용역업체를 단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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