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재판부 “고문에 따른 자백은 증거 못돼”
‘국가기밀 유출혐의’ 재일동포 2명 누명 벗어
‘국가기밀 유출혐의’ 재일동포 2명 누명 벗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빌미가 됐던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들에게 34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황한식)는 23일, 전방 견학을 하면서 탐지한 군사기밀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재일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소속 공작원에게 전달하고 유신헌법을 비방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던 김정사(56)씨와 유성삼(57)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70년대 모국으로 유학 온 재일동포 김씨와 유씨는 간첩 혐의로 1977년 4월 국군보안사령부에 체포된 뒤 구속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해 거짓자백을 했다”고 호소했으나 대법원은 각각 징역 10년과 6년형을 확정했고, 이들은 1979년 8월 형집행정지 결정이 날 때까지 구금돼 있었다. 또 국외 유신독재 반대 단체인 한민통은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이 판결 탓에, 한민통 결성 당시 의장으로 내정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내란음모 사건’의 수괴로 지목돼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이 “피의자들에 대한 불법구금, 고문, 폭행, 협박을 통해 조작됐다”고 결론을 냈고, 김씨 등은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재심 재판부는 이날 “보안사에 의한 영장 없는 구속과 고문, 이후 계속된 위협으로 이뤄진 김씨 등의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며 “우연히 북한 평양방송을 통해 명동성당에서 있은 반정부 집회,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반정부 투쟁 소식 등을 청취했다고 해서 이것만으로는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거나 주관적으로 반국가단체에 이롭다는 데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긴급조치 9호는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한 유신헌법이나 현행 헌법에 비춰볼 때 표현의 자유나 청원권을 제한해 위헌이므로, 이들의 긴급조치 위반 혐의도 무죄”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1978년 대법원이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한민통의 성격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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