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정지·수사 압박 못이긴듯…합수단, 저축은 7곳 압수수색
최근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비리 의혹 수사 대상에 오른 제일2상호저축은행의 정구행(50) 행장이 23일 투신자살했다.
정 행장은 제일2저축은행에 대한 정부 합동수사단(합수단)의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이날 낮 12시5분께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이 은행 본점 6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투신 장면을 목격한 이아무개(48·여)씨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머리부터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낮 12시께까지 정 행장과 함께 있었던 박아무개 이사는 “정 행장이 투신하기 직전 건물 3층 집무실 의자에 양복 상의를 걸쳐두며 ‘지갑 속에 몇 자 적어놨다’고 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뒤 방에 와보니 아무도 없었다”며 “정 행장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더니 그가 ‘먼저 가서 미안하다. 매각 절차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정 행장이 남긴 문건에 ‘최근 매각 관련 실사가 진행중인데 실사가 잘 안될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 고객에게 미안하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정 행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풍납2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정 행장의 장모 남아무개(67)씨는 “일은 다른 사람이 저질러 놓고 엉뚱한 사람이 다쳤다. 부산저축은행 사건 이후 힘들어하는 눈치였지만, 지난 추석 때는 ‘다 잘 해결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정 행장의 고모부 윤아무개(62)씨도 “착하고 섬세한 성격인데 수사를 받다 보니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수단은 이날 제일2저축은행을 포함해 지난 18일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7곳(토마토·제일·프라임·에이스·대영·파랑새)과 대주주·임원 집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합수단은 압수수색을 통해 여신 관련 서류와 전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고발된 저축은행이 동일인 대출한도 초과나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부실대출 등이 많기 때문에 관련 자료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며 “압수수색 자료를 토대로 위법 여부를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합수단은 금융감독원이 고발한 저축은행 대주주·경영진들을 출국금지 조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날 확보한 저축은행들의 여신 자료 등을 검토한 뒤 불법대출 등의 혐의가 있는 은행 경영진 등 관련자들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박태우 김태규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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