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역사왜곡 바로잡고 상처 보듬기 앞장선 충북·제주지부 / 정해숙

등록 2011-09-25 19:29수정 2011-09-26 15:15

전교조는 1995년 6월 중앙집행위원회를 제주도에서 열고 이용중(왼쪽 넷째) 제주지부장이 직접 발굴한 ‘4·3 항쟁 유적지’를 답사했다. 사진은 90년 제주역사기행에 참여한 전교조 해남지회 조합원 선생님들이 ‘4·3 학살 현장’의 하나인 정방폭포에서 함께한 모습.  
사진 전교조 전남지부 제공
전교조는 1995년 6월 중앙집행위원회를 제주도에서 열고 이용중(왼쪽 넷째) 제주지부장이 직접 발굴한 ‘4·3 항쟁 유적지’를 답사했다. 사진은 90년 제주역사기행에 참여한 전교조 해남지회 조합원 선생님들이 ‘4·3 학살 현장’의 하나인 정방폭포에서 함께한 모습. 사진 전교조 전남지부 제공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93
전교조는 매달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시기마다의 사업계획을 논의, 결정한다. 1995년에는 현안이 있는 지역이나 역사적인 현장을 찾아 중집위를 열기로 해 몇차례 지역 지부를 찾았다. 대표적인 곳이 충북과 제주 지부였다.

충북에서는 94년 창립된 충북사회민주단체연대회의가 첫 사업으로 친일·변절한 인사의 동상을 철거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사업을 시작했다. 맨 먼저 95년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건립추진위원회(대표 신경득)를 구성해 청주 삼일공원에 서 있는 정춘수 동상을 철거하고 대신 서거 60주기인 96년 8월15일까지 단재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추진위는 국민성금으로 건립기금을 조성하되, 소액의 다수가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전국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전교조에서도 그해 3월 충북지부에서 중집위를 열고 지부장 도종환(시인) 선생님의 제안으로 단재 동상 건립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한 뒤 삼일공원을 비롯한 지역 일대를 답사했다. 나는 전교조 대표로 동상건립 발기인에 참여했다. 송건호(한겨레신문사 고문)·이이화(역사문제연구소 소장)·강만길(고려대 교수)·이기백(한림대 교수)·고은(시인)·신경림(˝) 선생 등이 함께했다.

6월 중집위는 제주에서 열렸다. 이용중 제주지부장은 당시 4·3 항쟁의 피맺힌 역사를 알리기 위해 현장을 직접 다니며 4·3 유적지를 발굴해 역사기행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이 지부장은 15개 시·도 지부장이 포함된 중집위원들부터 역사 현장을 직접 보고 체험해야 전국 조합원들에게 널리 알려질 것이라며 제주도에서 회의를 열 것을 여러 차례 제안했다. 그러나 바쁜 일정 등으로 제안은 번번이 수용되지 못하다가 그때서야 어렵사리 성사된 것이었다.

이 지부장이 안내하는 4·3 항쟁 답사 일정은 무척 빡빡했다. 작은 체구에 열정이 넘치는 그는 지친 기색도 없이 여기저기 안내했지만 우리 일행은 힘에 부칠 정도였다. 다랑쉬 동굴, 큰넓궤, 선흘 낙성동 성곽, 이덕구 산전, 일제 때 공군비행장이었던 알뜨르 비행장 등 수많은 학살터와 피신처 등을 돌아다녔다. 큰넓궤 구간을 갔을 때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입구에서는 몰랐는데 어느 정도 들어가자 동굴 안이 점점 좁아지더니 급기야 행군을 멈춰야 했다. 특히 키가 180㎝가 넘는 고진형 전남지부장이 난감해했다. 우리는 결국 동굴 답사를 포기하고 뒷걸음으로 기어서 되돌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도 이 지부장은 현대사의 뼈아픈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겠다며 일행을 다음 구간으로 이끌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알리는 일에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지역 동지들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96년에는 덴마크의 분야별 노동조합 위원장 23명이 전교조를 방문했다. 일본에서 열린 국제 행사를 마친 뒤 전교조가 한국에서 가장 개혁적인 단체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자국에서도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이들 대표단은 성문밖교회(영등포산업선교회) 강당에서 우리 집행부와 만나 이동진 연대사업위원장의 통역으로 제법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정해숙 전 전교조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위원장
전교조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 때였다. “아까 위원장님께서 전교조 소개하실 때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전교조가 한국에서 가장 개혁적인 조직으로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혁적인 조직에서 어떻게 민족교육을 강조하십니까?” 한 노조 대표의 질문을 받은 나는 ‘제대로 짚어주는구나’ 싶어 기뻤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아닙니까. 남북이 대치한 채 지금도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남쪽에서는 통일이나 노동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좌경용공으로 매도해왔습니다. 하여 우리는 통일교육이라는 표현보다 민족교육을 내세워 통일을 대비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세계는 하나가 되는 지구촌 시대이니 당연한 지적이지만, 우리의 현실과 처지가 그렇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반도의 남북통일은 세계 평화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니 많은 관심과 함께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대치한 채, 통일을 위한 노력이 오히려 탄압받는 우리의 상황을 외국 사람들에게 설명하면서 새삼 ‘후진적인 현실’이 안타까웠다. 전 전교조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