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 소액대출·생계비 지원 협동조합 준비
조합원은 매달 1만원씩 회비…내년 시범사업 목표
조합원은 매달 1만원씩 회비…내년 시범사업 목표
#수도권의 지역문화재단에서 1년 계약을 맺고 영상물을 만드는 브이제이(VJ) 권태경(가명·31)씨는 매달 들어와야 할 80만여원의 급여가 밀릴 때면 “피가 마른다”고 했다. “돈이 늦게 들어올 때 꼭 쌀이 떨어지고 차비가 떨어지더라고요. 많이도 걸어다녔어요….”
20대 후반부터 집에서 독립해 시나리오 작가, 영상 촬영 일을 했던 그는 한달 100만원 안팎을 받는 일자리를 돌며 생활비 때문에 빚을 지고 있다. 그는 “신용카드를 안 쓰려고 하다 보니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한테 최근 몇년 동안 200만원 정도 빌린 상태인데 쉽게 갚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한테 50만원 빌리는 것도 부담되고, 은행에서 50만원 대출한다고 하면 비웃을 거고…. 단돈 5만원이 없어서 힘들 때도 많아요.”
#보험회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아무개(29)씨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변화가 생기면 응급사태”라고 말했다. 25살부터 3개월~1년 단위로 아르바이트·비정규직을 수차례 경험한 그는 “100만~130만원 안팎의 월급에 방세와 생활비를 쓰고 나면 저축은 꿈도 못 꾼다”며 “실직도 계획적으로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젊어 고생해서 나중에 편해진다면 힘이 나겠는데 이렇게 5년, 10년을 살아야 할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청년유니온·함께일하는재단·희망청이 지난 6~8월 15~34살 비정규직·아르바이트 노동자·취업준비자 31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생활비·주거비 등 ‘불안’을 안고 사는 ‘청춘’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현재 부채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48.5%였고 평균 1018만원씩 빚을 지고 있었다. 최근 1년 동안 긴급하게 돈을 빌린 사람도 30.9%로 생활비(51%)·학자금(21%)·주거비(12%) 때문에 빚을 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37.5%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 44.1%(지난 3월 통계청 자료)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이마저도 실업급여 수급자격 조건에 모자라거나 제도를 잘 몰라 조사 대상자의 86.5%가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에 이들 단체는 청년연대은행(청년협동조합) 설립에 팔을 걷고 나섰다. 이들은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함께일하는재단 사무실에서 토론회를 열어 청년연대은행의 활동방향과 설립계획을 논의하기로 했다.
청년연대은행은 회원으로 가입한 조합원이 각자 매달 1만~2만원 안팎의 일정액을 내고 은행에 맡겨, 조합원이 긴급하게 돈이 필요할 경우 50만~100만원의 소액대출이나 생계비를 지원해주는 협동조합이다. 금융 전문 단체와 연결해 조합원들의 재무상담도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주민들이 지난 3월 만든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이나, 일본의 ‘반빈곤 서로 돕기 네트워크’가 좋은 예다. 이들은 100~200명으로 작은 조합을 꾸려 출자금을 모은 뒤, 돈이 필요한 조합원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조성주 정책팀장은 “20~30대 청년층이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태”라며 “구직자·아르바이트·계약직 등 ‘워킹 푸어’를 위한 대안적 사회안전망을 만들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단체는 ‘에듀머니’ 등 전문가 단체 등과 함께 은행 모델을 설계한 뒤 2012년 설립을 목표로 내년 초에 시범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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