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영화 ‘도가니’ 파장 확산
‘도가니’ 검사 검찰게시판 글
홈피에 썼던 일기 싣고
“사회 어두운 자화상
반성 기폭제 됐으면”
‘도가니’ 검사 검찰게시판 글
홈피에 썼던 일기 싣고
“사회 어두운 자화상
반성 기폭제 됐으면”
영화 <도가니>에서, 가해자들을 처벌해야 할 주임 검사는 되레 사건을 축소해 준 대가로 대형 로펌에 ‘스카우트’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문제의 검사는 피고인인 가해자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거인 성폭행 장면 녹화 영상을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되게끔 유도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현실 속 주임 검사는 영화가 불러온 뜻밖의 논란에 어떤 심경일까?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임은정(37·여·사법연수원 30기) 검사는 30일,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광주 인화원… 도가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29일 영화 <도가니>를 봤다는 그는 2007년 당시 ‘광주 인화원 사건’ 재판 때 검사로 참여했었다. 임 검사는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당시 적어두었던 일기를 다시 길어 올리며, 항소심에서 가해자들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에 “치가 떨렸다”고 털어놨다.
그가 게시판에 올려놓은 2007년 3월12일의 일기는, 그날 열린 재판에서 청각장애 피해자들을 증인신문한 뒤 소회를 적은 것이다. 그는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없이 울부짖는다”며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이라고 기록했다. “눈물을 말리며” 이들의 손짓과 몸짓을 지켜봐야 했던 임 검사는 “어렸을 적부터 지속된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 그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이 (검사인)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1년 반 정도 시간이 흐른 뒤인 2009년 9월20일에도 그는 같은 문제의식을 일기에 적었다. 원작소설인 <도가니>를 읽고 나서 쓴 글이다. “내가 잘 아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걸 알기에 읽을 엄두를 못 내던” 그는 결국 예전의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빨려들듯” 책을 읽는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는 뉴스를 들었다”는 그는, “성폭력에 관대한 선고 형량을 잘 아는 나로서는 피해자들처럼 황당해하지는 않지만, 치가 떨린다”고 썼다.
임 검사가 옛 일기를 다시 들추게 된 건 “어제 <도가니>를 보고 그때 기억이 떠올라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밤새 뒤척이느라 부은 얼굴로 출근했다는 그는 “피해자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결과에, 경찰·검찰·변호사·법원의 유착이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속상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을 반성하는 기폭제가 된다면, 또다른 도가니를 막을 수 있다면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일기가 “공판 관여 검사의 해명자료”라고 밝혔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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