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업 외국인 고용허가제의 그늘
농촌 1만여명, 중노동 허덕이다 겨울철 대량 해고
지원·관리감독 사각지대…불법체류 ‘제조업 2배’
농촌 1만여명, 중노동 허덕이다 겨울철 대량 해고
지원·관리감독 사각지대…불법체류 ‘제조업 2배’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농축산업 분야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과 비인간적 대우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농어촌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한다는 취지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농축산업에까지 확대됐지만,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한데다 고용주의 인권의식까지 부족하다 보니 장시간·저임금 노동, 인권침해, 불법체류 증가 등 각종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5일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말 현재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국내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1만여명으로 집계됐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는 2007년부터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해 최근 3년간 연평균 3천여명가량이 국내에 들어왔다. 특히 올해는 7월까지만 4천여명이 입국했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월 220시간 노동, 월 2일 휴식에 97만여원의 월급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국내에 들어온다. 제조업에서는 이런 노동 조건이 불가능하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이 농축산업 노동자에 대해서는 근로시간·휴일·휴가 등에 대한 예외규정을 두고 있어, 고용주는 한 달에 2일만 쉬게 하고 일을 시킬 수 있고 연장근로수당도 시급의 150%가 아니라 100%만 지급하면 된다.
이 때문에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강원도 양구에서 일했던 캄보디아인 쏘피읍(가명·22·여)은 “공장에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에 비해 임금도 적고, 일하는 시간도 너무 길다”며 “캄보디아 의류공장에서 일할 때도 연장근로수당은 줬는데 한국 농장은 주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겨울철엔 대량 해고가 일어난다. 사장과 1년짜리 계약을 맺고 입국하지만 일거리가 떨어지는 겨울이 되면 사장이 고용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마야 머거르 사무국장은 “늦가을 수확이 끝나면 예고 없이 해고되는 경우가 많아 모아둔 돈으로 겨울철 3개월을 버티다가 다시 일을 구한다”며 “사업장 변경 횟수가 3차례로 제한돼 있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주노동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3년간 제조업 이주노동자의 불법체류 비율은 7~8% 수준이나, 농축산업은 13~15%에 이른다.
농축산업 고용주들의 인권의식이 뒤떨어지는데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단체가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경기도 광주의 상추농장에서 일했던 네팔인 아사 타파(가명·35·여)는 “사장이 일할 때마다 늘 욕을 했고, 숙식 문제 등에 대해 개선해 달라고 하면 ‘그냥 나가라’고 했다”며 “아파서 병원을 가려고 해도 일이 많아 못 가고 약을 먹고 일했다”고 말했다. 마야 머거르 사무국장도 “농촌에는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단체가 없어 불법행위를 당하고도 제대로 도움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정정훈 변호사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는 그동안 제도의 공백지대에서 소외돼왔다”며 “근로기준법 적용제외 규정을 손보고, 사업장 변경 횟수를 제한한 고용허가제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이승준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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