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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5·18 희생에 빚진 교육민주화…박관현·윤상원상 수상 / 정해숙

등록 2011-10-09 19:39

정년퇴임한 직후인 1999년 10월12일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 열린 박관현장학재단 주최의 ‘박관현 열사 17주기 추모식’에서 필자(오른쪽)가 이방기(왼쪽) 이사장으로부터 ‘제4회 관현민주대상’을 받고 있다.
정년퇴임한 직후인 1999년 10월12일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 열린 박관현장학재단 주최의 ‘박관현 열사 17주기 추모식’에서 필자(오른쪽)가 이방기(왼쪽) 이사장으로부터 ‘제4회 관현민주대상’을 받고 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103
‘3당합당’의 파행과 진통 끝에 1993년 집권에 성공한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은 초반 잠시 개혁성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강경보수 일변도로 치달았다.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들어선 첫 민주정부라고 홍보했던 문민정부는 기대와 달리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96년 여름 연세대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 및 범민족대회 이후 벌어진 대규모 폭력 시위를 이유로 대법원은 97년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했다. 학생들의 탈퇴를 유도했고, 탈퇴하지 않으면 무조건 잡아들였다. 한총련 간부들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수배령을 내렸다. 수배된 오창규 남총련 의장 등 한총련 간부 일부가 98년 8월부터 조계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그사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 복직을 한 와중에도 나는 서울에 갈 때마다 조계사에 들러 농성중이던 한총련 간부들을 찾아 위로하곤 했다. 한번은 학생들에게 이런 권유를 했다. “조계사에 있으니 절을 좀 해보면 어떨까? 조직생활을 하려면 자기를 낮추는 훈련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떤 우상에 대해 절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총련 간부들이니까 자기를 낮추는 하나의 수행 방법으로 절을 하는 것이 어떨까.”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 다시 방문했을 때 생각이 나서 “그동안 절을 하면서 수행했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몇몇 학생이 “저 친구는 3천배도 했어요” “저도 열심히 했어요” 하며 보고하듯 다투어 말했다. “수고들 했네.” 짧은 말로 격려했지만 내심 대견했다. 수배 생활의 어려움을 이기는 데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혼자 생각했다.

정년퇴임 직후인 99년 10월 나는 박관현장학재단(이사장 이방기)으로부터 ‘관현민주대상’을 받았다. 조비오 신부, 강신석 목사, 지선 스님에 이어 네번째 수상자였다. 시상식은 박관현 열사가 잠들어 있는 광주 망월묘역에서 17주기 추모식과 함께 열렸다. 91년 전교조 광주지부장을 마친 이듬해 ‘제2회 윤상원상’ 사회운동부문 개인상을 받은 데 이어 두번째 민주열사상이었다.

박관현과 윤상원. 두 사람은 80년 광주민중항쟁의 한복판에서 광주를 지키기 위해 군부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숨을 거둔 인물들이다. 두 사람 모두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의 교사로서 힘겨운 노동으로 지친 상태에서도 배움에 목말라 하는 어린 노동자들을 가르친 순수한 청년들이었다. 박관현은 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5·18’ 직전까지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을 주도했다. 항쟁 이후 내내 도피 생활을 하다 82년 4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은 그는 50일간의 옥중 단식투쟁 끝에 눈을 감고 말았다. 윤상원은 80년 5월 군부세력과 유착해 광주의 실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광주 문화방송국이 시민들에 의해 불에 탄 뒤 광주시내가 고립되자 <투사회보>를 만들어 신군부 학살 실상과 광주의 처절한 상황을 알렸다.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발포하자 시민항쟁 지도부를 규합하고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한 그는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도청 진압 때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30살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두 사람의 뜻을 기리기 위한 상을 내게 준 뜻은 전교조 활동을 통해 교육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럼에도 아까운 두 젊은이들의 희생이 떠올라 상을 받는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2000년 초 비전향 장기수 어른들의 북한 송환 문제가 논의된 끝에 그해 9월 성사됐다. 6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5개항의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분단 55년 만에 처음 이루어진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나는 서울 낙성대 쪽에서 권오헌 양심수 후원회장이 운영하던 ‘만남의 집’, 광주 두암동의 ‘통일의 집’과 산수동 일대의 장기수 어른들을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가끔 찾아뵙고 인사드렸다. 9월2일 북한으로 가기 며칠 전 어르신들을 음식점으로 모셔 마지막 석별의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통일의 노래’를 같이 부르며 아쉬운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연로한 장기수 63명은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갔다. 93년 리인모 선생이 첫 물꼬를 튼 데 이어 두번째 대규모 송환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지금까지 추가 송환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광주에는 서옥렬 선생 등 몇명의 비전향 장기수 어른들이 외롭게 남아 있다.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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