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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뢰에 한 다리 잃었지만, 정부는 “배상 불가”

등록 2011-10-13 17:07

한반도의 전쟁시계는 몇시몇분일까? 1950년 6월 시작된 한국전쟁의 포성은 그저 멈춘 채다. 국제법적으로 남과 북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반세기를 훌쩍 넘은 불안한 휴전체제, 민간인 지뢰 피해자들은 어두운 휴전의 그늘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

 1995년 6월13일 강원 양구군에 사는 ㄱ(76·여)씨는 나물을 캐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양구군 해안면 현리 제4땅굴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야산에서 나물을 캐다 미끄러진 그의 엉덩이 아래에서 ‘엠-14’ 대인지뢰가 터졌다. 지뢰는 당시 54살이던 ㄱ씨의 엉덩이 살과 뼈를 녹여냈고, 허벅지 살도 거의 앗아갔다.

 ㄱ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땅굴 발견 뒤 북의 침투에 대비해 군부대가 발목지뢰를 대량 살포해 놓은 지역이다. 하지만 사고 당시 그 일대에는 철조망도 없었고, 길까지 나 있었단다. ㄱ씨는 크게 다쳤지만 피해보상 청구를 접어야 했다. 지뢰 피해를 입은 동네 주민들 가운데 보상금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되레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벌금을 문 이들도 있다.

 치료에는 꼬박 2년이 걸렸다.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7년 6월 양구군 의료보험조합이 구상권을 근거로 육군 3군단에 배상청구를 했지만, ‘개인과실’이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ㄱ씨는 지금도 잦은 염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제 구실을 못하는 왼쪽 다리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못하고 있다.

 지뢰피해자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평화나눔회(옛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는 13일 지난 3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도내 18개 시·군에 거주하는 민간인 지뢰피해자 전수조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 2006년 양구와 철원 등 2개지역에 대한 실태조사가 진행된 적은 있지만, 도 차원의 전수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원도와 함께 휴전선을 이고 있는 경기도에서도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에 비춰, 이번 조사는 민간인 지뢰피해자에 대한 첫 전수조사인 셈이다.

 조사결과를 보면, 분단 이후 지금까지 강원지역에서 지뢰사고를 당한 민간인은 모두 228명에 이른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피해자도 139명이나 새로 포함됐다. 사고원인으로는 ‘엠(M)-14’ 대인지뢰 피해자가 137명으로 가장 많았고, △엠(M)-16 대인지뢰 22명 △대전차지뢰 18명 △목함지뢰 9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양구가 89명으로 가장 많은 지뢰 피해자를 냈고, 이어 △철원 67명 △고성 31명 △인제·화천 각 9명 등 차례였다. 휴전선과 맞닿아 있지 않은 ‘비접경지역’인 춘천(10명)·홍천(8명)·평창(3명)·양양(2명)에서도 지뢰피해자가 나왔다.

 지뢰사고는 분단 직후인 1950년대(43명)보다 휴전선 인근 황무지 개간을 위해 정부가 ‘개척민’을 정책적으로 입주시켰던 1960년대(73명)가 많았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지역에 대한 농민입주 정책이 이어진 1970년대에도 모두 49명이 지뢰피해를 입었다. 이후에도 지뢰관리 소흘과 안전교육 미흡 등으로 △1980년대 22명 △1990년대 28명 △2000년대 10명 등 지뢰피해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뢰피해를 입은 민간인 절대 다수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피해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8명은 사고를 당하고도 “배상신청이나 소송을 몰랐다”고 답했다. “군부대에 밉게 보이면 불이익을 당할까봐”(33명), “사고가 나도 본인 책임이라는 각서 때문에”(11명), “소송해도 안될 것 같아서”(3명) 보상신청을 하지 않은 이들도 다수였다. 평화나눔회가 “지뢰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의료·생계지원 대책을 담은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지선 평화나눔회 사무국장은 “명백한 ‘안보재해’인 지뢰사고를 우리 사회는 오랜기간 ‘개인의 실수’로 치부해 눈감아 왔다”며 “피해자 대부분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생계곤란에 허덕이는 만큼,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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