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들, 연차사용 촉진제 빌미로 ‘경비절감 꼼수’
직장인은 “강심장 아니고선…” 휴가내도 못쉬어
직장인은 “강심장 아니고선…” 휴가내도 못쉬어
한 서비스업종 중견기업의 6년차 대리 김아무개(32·여)씨는 9월 말 회사 인사팀으로부터 ‘잔여연차 사용계획’을 제출하라는 문서를 받았다. 문서에는 ‘남은 연차를 소진하기 위해 올해가 가기 전에 휴가계획을 내기 바랍니다. 내지 않으면 회사에서 휴가계획을 작성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씨의 잔여연차는 15일. 올해 유독 프로젝트가 많아 여름휴가 4일을 제외하고는 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그는 “눈치가 보여서 가지도 못한 휴가를 연말까지 가라고 하면 누가 가겠느냐”며 “연차보상비를 안 주려는 회사의 꼼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가 김씨에게 휴가계획 제출을 요구한 것은 근로기준법의 ‘연차 유급휴가의 사용촉진’ 조항(61조)에 따른 것이다. 이 조항은 연차발생일 기준 1년이 만료되기 3개월 전(보통 9월 말)에 사용자가 개별 노동자에게 남아 있는 연차 일수를 사용하기 위한 휴가계획 제출을 요구하도록 돼 있다. 만약 10일 안에 노동자가 휴가계획을 내지 않으면 회사가 강제로 휴가계획을 작성해 알려주고, 이 경우 노동자가 휴가를 사용하지 않아도 사용자는 남아 있는 연차에 대한 유급휴가 보상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회사 분위기상 마음 놓고 휴가를 갈 수가 없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가계획 제출 절차가 자칫 회사 쪽의 경비절감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상당수 직장인은 “본인이 작성한 계획대로 휴가를 갈 수 있는 ‘강심장’은 아무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통신회사에 다니는 홍아무개(29)씨는 “연말에 인사평가도 있는데 누가 맘 편하게 휴가를 갈 수 있겠느냐”며 “휴가계획은 그냥 작성만 하는 것이지, 하루 이틀 가는 사람은 있어도 휴가 다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노무법인 ‘정성’의 장영국 노무사는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도화된 연차 사용 촉진제도가 오히려 사용자에게는 연차 보상비 지급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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