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인정 안한 ‘돈 전달’ 지난 8월29일 오후 경기도 일산동구 한명숙 전 총리 자택 앞 도로에서 검찰과 한 전 총리 변호인단이 현장검증을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판결문 보니
곽영욱
곽영욱
‘권토중래’를 벼르며 한명숙 전 총리를 거듭 기소했던 검찰이, 31일 다시 무죄 판결문을 받아들었다. 이번에도 범죄임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검찰은 한 사람을 두번 기소해 모두 패하는 ‘드문 기록’을 작성하게 됐다. 한번은 5만달러 뇌물수수 혐의로, 또 한번은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연거푸 한 전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앞의 사건은 이미 항소심이 진행중이고, 이번 9억여원 수수 사건도 검찰이 항소하기로 해 곧 상소 절차에 들어가겠지만,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다투는 1심에서 패배한 검찰로선 만회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의 무리한 ‘표적수사’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의 부정·비리를 찾아내 단죄해온 것이 검찰의 오래된 숙명이라지만, 두번의 한 전 총리 사건에서 검찰은 과거 정권 핵심인사의 처벌이라는 ‘목적의식’에 골몰한 나머지 부실한 수사와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평가가 검찰 안에서도 나온다. 특히 돈을 줬다는 사람의 ‘입’, 즉 진술에만 기대어 안이하게 수사하고 기소했다가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2009년 말에 불거진 5만달러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서도, 이번에 판결이 난 9억여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에서도 ‘공여자’들의 진술에 기대었다가 나중에 이들의 진술이 바뀌자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건넸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은 나중에 “총리공관에서 빈 의자에 놓고 나왔다”는 것으로 바뀌었고, 애초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한 전 총리에게 줬다고 했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는 “다 내가 지어내서 한 거짓말”이라며 검찰 공소사실의 바탕을 흔들었다.
특히 검찰은 5만달러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선고 공판이 있기 하루 전날 한신건영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이번엔 확실하다’는 취지로 장담까지 했던 터라 이날 판결로 몹시 민망한 처지가 됐다. ‘1차전’에서 패색이 짙자 무리한 ‘2차전’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가 또다시 무죄 판결로 이어졌다고 비판해도 반박이 쉽지 않게 된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돈을 줬다는 진술이 나오더라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수사 주체인 검찰이 꼼꼼히 검증을 해야 한다”며 “두번의 한 전 총리 수사에서는 이런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만 알고, 대부분 ‘말(진술)’이 유력한 증거가 되는 뇌물 또는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서는 재판부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입증해야 할 책임이 검찰에 있는데, 두번의 한 전 총리 사건에선 ‘의욕’만 앞세웠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검찰 수사의 문제점은 이번 판결을 한 재판장도 짚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김우진 부장판사는 이날 판결선고 이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한 전 총리에게 건네졌다는 돈의 행방은 알 수 없고 한 전 총리 쪽이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확실히 해명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입증 책임을 진 검찰이 형사소송법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입증에 이르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이 건너갔다는 여러 정황을 들며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판결문을 보면, 한 전 대표가 9억원을 조성하고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한 전 대표의 수표 1억원을 사용한 사실 등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한 전 총리가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표방해왔고, 조심성이 없는 성품의 소유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관적인 판단으로 객관적인 물증을 합리적 사유 없이 배척했다”고 반박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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