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계좌추적 주력에도 구체적 투자내역 파악 못해
손길승 전 회장은 10년전 ‘주가지수 선물’ 5천억 손실
손길승 전 회장은 10년전 ‘주가지수 선물’ 5천억 손실
검찰이 최태원(51) 에스케이(SK) 그룹 회장의 회삿돈 횡령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최 회장이 5000억원을 쏟아부은 선물투자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두고 궁금증이 일고 있다.
선물거래는, 글자 그대로 미래에 사고팔 상품을 현재 시점에 정한 가격으로 매매 계약을 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싼 가격에 사고 비싼 가격에 팔면 이득이다. 가격 변동 폭이 클수록 이문도 커져 항상 ‘투기적 거래자’가 존재한다. 기후에 따라 가격 변동 폭이 큰 농산물을 시작으로 정착된 선물투자는 원유·금·고무 등으로 확대됐으며, 달러나 엔화, 주가지수나 개별 주식에 대한 금융선물도 거래되고 있다. 선물계약을 토대로 미래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하는 방식은 선물옵션이라고 한다.
앞서 에스케이 그룹은 선물투자를 통해 천문학적인 손실을 본 경험이 있다. 1998년부터 4년 동안, 손길승 당시 그룹 회장이 에스케이해운의 자금 7884억원을 주주임원 단기 대여금 명목으로 인출해 선물투자에 나섰다가 5184억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당시 손 회장의 투자 대상은 주가지수 선물이었다. 이 일로 손 회장은 배임(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부는 “전문 투자조직 없이 비전문가인 손 회장 등이 잘못된 투자를 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당시 손 회장의 선물투자를 조언한 것으로 알려진 김원홍 전 에스케이해운 고문은, 이번에 문제가 된 최태원 회장의 선물투자에도 깊숙이 간여했다.
최 회장은 2008년부터 선물에 손을 댔다가 결국 4000억원을 날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상품에 어떻게 투자했었는지는 드러난 게 없다. 계좌추적에 주력하고 있는 검찰도 최 회장의 투자 내역은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스케이 내부에서도 최 회장 일가의 선물투자 내역과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 김원홍 전 고문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한편 최 회장의 횡령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중희)는 최 회장이 선물투자를 위해 수천억원을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받는 과정에서 회사 자산을 담보로 제공했다는 의혹도 수사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선물투자금 대출과 관련해) 동기와 계기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스케이 관계자는 “최 회장이 회사 자산을 담보로 개인적 대출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수사팀은 에스케이 계열사와 창업투자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 그리고 베넥스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회사들에서 가져온 압수물을 분석하고 있으며, 다음주부터는 에스케이의 관련 임직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김태규 노현웅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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