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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 “다시 함께 달려가자”

등록 2011-11-15 16:17

제2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 영도를 찾은 지난 7월10일 새벽, 송경동 시인이 도로를 막고 선 경찰 차단벽 앞에서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제2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 영도를 찾은 지난 7월10일 새벽, 송경동 시인이 도로를 막고 선 경찰 차단벽 앞에서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송경동 시인이 없었으면 김진숙 지도위원이 어떻게 됐을까. 김진숙씨가 절망의 심연을 헤매고 있을 때 기적처럼 희망버스로 가서 그를 구원하고 마침내 그를 살아 내려오게 한 송경동 시인이다. 이 시대는 그를 기록할 것이다. 시인을 자유롭게 하라!”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15일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실장이 경찰 자진 출두를 앞두고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송경동 시인에게 바친 헌사다.

 송경동 시인은 ‘희망버스’를 기획하고 제안해 수천명의 사람들이 희망버스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희망버스를 출발시키며 겪은 몸고생·마음고생·희망·절망·보람이 모두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야간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4개월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송 시인은 그러나 한진중공업 노사합의를 계기로 경찰서에 자진출두하기로 했다.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실장도 마찬가지다. 송 시인은 경찰조사를 받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에 앞서 “희망버스를 지켜주신 분들 한 동지, 한 동지의 얼굴 기억한다”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희망버스를 지켜준 이들에게, 끝끝내 이겨낸 탑승객들에게 우리 박수 한 번 칩시다”라는 말을 남겼다.

  송 시인에게 희망버스는 무엇일까. 송 시인은 경찰 출두에 앞서 희망버스 온라인 카페에 ‘희망의 버스 승객들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글 한 편을 남겼다. 이 글에서 송 시인은 “희망버스는 ‘깔깔깔’이라는 유쾌한 형태를 띠었지만 안으로는 수없이 많은 노동자 민중의 눈물이 가득찬 눈물의 버스”라고 말했다.

 

  “1차 당시 공장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던 조합원들과 가족들의 눈물, 3주만에 인권버스, 성소수자버스, 반값등록금버스, 교수학술, 문화예술인버스, 보건의료, 종교인, 촛불시민, 철거민 버스 등 실제로 전국에서 193대의 버스가 만들어지던 2차의 순간들, 하루 40km를 걸어내려가던 쌍용차 정리해고자들과 소금꽃 천리길의 사람들, 다시 쌍용차 가대위가 한진 가대위 분들을 만나기 위해 출발시켰던 희망의 열차, 황금같은 휴가를 반납하고 몰려든 1만2천여 사람들의 물결로 장관을 이루었던 3차, 걸어걸어 새벽까지 산복동 고개를 넘어가던 사람들, 4차 때 ‘모든 비정규직들의 행진’이 조직되던 과정, 그간 십수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안타깝게 고공농성에 들어가야 했던 노동자들의 100명의 연대, 그리고 이름없이 희망의 버스를 함께 지켜주었던 지역 희망의 버스의 승객들이 보여주었던 수많은 일들. 그 모든 이들의 뜨거움이 일순 한국사회의 지형을 바꿔나갔다. 모두가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함께 이겨왔던 지난 반년이었다.”


벽도 많았다고 말했다.

 

“재벌의 사설경비대가 되어 철통같이 영도를 지키던 경찰들의 차벽과 폭력을 쉽게 넘을 수 없었다. 정리해고 철회를 무슨 사회주의 운운하며 막아서던 이데올로기의 벽도 높았다.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훼방버스라고 공격하며, 희망버스의 운동이 한진이라는 단위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악독한 재벌체재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저항과 분노로 터져나오는 것을 막으려 했던 청와대와 보수수구 언론들의 벽도 완강했다. 재벌총수의 국회 출석은 있을 수 없다고 발악을 하던 전경련과 경총의 반사회적 저항도 넘어야 했다. 6·27 기만적인 노사협의서라는 합법의 울타리도 넘어야 했다. 무엇보다 지난 십수년 우리 내부를 좀먹어왔던 패배주의를 넘어야 했다” 

왜 ‘85호 크레인’ 이었을까.

 

“특히 김진숙 선배가 오른 85호 크레인은 93년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매달고, 곽재규 열사가 도크에 떨어져 죽은 한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후 8년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는 김진숙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올라갔을까, 간담이 서늘했다.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재능과 쌍용, 콜트콜텍, 발레오, 유성, 전주버스도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85호 크레인 그곳은 그냥 단위사업장의 어느 한 곳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지난 서러운 역사가 고스란히 배인 곳이었다. 최소한의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었다. 다시는 절망의 무덤이 되지 않고, 희망의 등대가 되어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송 시인은 이 ‘희망의 버스’는 끝나지 않았다고 다짐했다. 계속 노동자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쌍용자동차 노동현장, 콜트콜텍 노동현장 등으로 이 희망이 번져나가야 한다고 썼다.

 

 “잊지 말 것은 희망의 버스는 이제 막 출발한 새내기 버스라는 것이다. 십수년동안 자행된 수백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900만명에 이른 비정규직 노예노동 체재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사회적 연대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다시 19분이 죽어간 쌍차로 가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던 어떤 벗의 이야기처럼,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우리 곁으로 내려오던 그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들에게서는 열아홉번째의 죽음이 발견되었다. 전화를 드린 문정현 신부님은 그 순간에도 강정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이라고 경황이 없다고 했다. 이 억울함을, 이 분노를, 이 참담함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최소한의 조직도 없어 이름없이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짓밟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빼앗긴 노동과 삶의 고통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1400일을 싸우고도 다시 100일 결사투쟁을 결의했다는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한을, 5년을 넘게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의 기타 만들던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을, 다시 잘려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단 한순간도 희망의 버스가 질 것이라고, 수많은 김진숙들이 질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멈추지 말고 다시 함께 달려가자.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하다.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기획자들이 되어주자. 이곳으로 가자고, 저곳으로 가자고, 서로 먼저 제안해주고, 실천해 가자. 1%에 맞선 99%의 승리는 멀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말자. 우리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꿈을 잃지 말자. 과거의 썩은 관념들과 잔해들로부터 탄압을 한번씩 더 받을 때마다 나의 우리의 영혼이 한층 더 맑아지고 밝아지는 일이라는 기쁨을 잃지 말자.”
 

 송 시인은 이 글을 남기고, 선물받은 베이지색 목도리를 목에 매고 기차를 탔다. 오후 4시11분에 부산역에 도착하는 송경동 시인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이승준 박수진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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