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고집이 세다’ 제2차 희망버스를 기획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송경동(왼쪽 둘째)씨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열린 ‘희망버스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부산 영도경찰서에 출석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희망버스 이끈 송경동 시인 경찰에 자진 출석
야간시위 주도로 수배받다 수사 받으러 부산행
“다른 노동자·시민 합류가 큰힘…기쁘지만 참담해
3년간 끌어온 쌍용차 복직에 관심 보여야할 때”
야간시위 주도로 수배받다 수사 받으러 부산행
“다른 노동자·시민 합류가 큰힘…기쁘지만 참담해
3년간 끌어온 쌍용차 복직에 관심 보여야할 때”
“(송경동 시인은) 참 고집이 세지.” “고집이 세야 시인이지.”
이야기를 듣던 시인 송경동(44)씨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졌다. 15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사무실 앞에 모인 이들은 송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했다”며 덕담을 건넸다.
한진중공업 노사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희망버스를 기획하고 진행한 송씨는, 이날 석달 넘는 수배 생활을 끝내고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과 함께 부산 영도경찰서에 자진 출석하기 위해 나서는 길이었다. 부산지방법원은 지난 7월 희망버스 야간시위 등을 주도한 혐의로 두 사람의 체포영장을 경찰에 발부해준 상태다.
한진중공업뿐 아니라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참사로 이어진 용산 철거민 투쟁, 콜트·콜텍 정리해고 투쟁 등에 꾸준히 참여해온 그는 서울역에서 부산행 케이티엑스(KTX) 열차를 타기 전까지 여러 차례 “희망버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내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송씨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희망버스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엠에프(IMF) 이후 수백만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해 온 이 야만적 상황이 끝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는 절박감이 희망버스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죠.”
한진중공업 노사 합의를 두고 그는 “기쁘지만 참담하다”고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고공농성을 벌이고, 150일 넘게 수많은 이들이 크레인 밑으로 모였어요. 하지만 부당한 정리해고 철회, 그거 하나 완전히 이뤄내지 못했잖아요.” 송씨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로 투쟁하고 있는 쌍용차·재능교육·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자기 문제를 제쳐놓고 모두 희망버스로 달려와 줬는데, 그분들의 힘이 컸다”며 “이제는 3년째 지켜지지 않는 쌍용차 복직문제에 사회가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희망버스 기획자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참여자로서 그는 다섯 차례에 걸친 희망버스를 통해 오히려 “배우고 또 배웠다”고 말했다. “마음속에서는 각자 슬픔과 아픔을 가졌을 수많은 노동자·시민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희망버스에 타는 모습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기운을 많이 얻었어요.”
송씨는 2009년 <사소한 물음에 답함>이란 시집을 낸 뒤 시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는 “시적 마음을 잊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게 곧 시를 쓰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며 “(수배를 받아 3개월 동안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지내다가) 이제 바깥으로 나왔으니 여러 군데서 자극을 좀 받으면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도 했다.
시집 <사소한 물음에 답함>은 지난 7월 뒤늦게 제29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에 선정됐고, 오는 22일엔 시상식이 예정돼 있다. “상을 받으러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송씨는 이날 부산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난 뒤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앞서 송씨와 ‘희망의 버스 기획단’은 민주노총 사무실 건물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규탄하고 희망버스의 미래를 기약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과 희망버스를 탔던 30여명이 자리를 지켰다.
송씨는 “희망버스를 지켜주신 한 동지, 한 동지의 얼굴을 기억한다”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희망버스를 지켜준 이들에게, 끝끝내 이겨낸 탑승객들에게 우리 박수 한 번 칩시다”라고 외쳤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잘 다녀오라”고 화답했다.
기획단은 “경찰조사에서 정리해고의 부당함과 연대의 의미를 알리고 우리의 당당함을 보여주겠다”며 “희망버스 참여자들에 대한 엄정수사 운운하는 검경은 김진숙 지도위원 등의 구속영장이 기각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의지를 제대로 읽어달라”고 했다.
기획단은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문제의 해결만을 위해 출발한 게 아니기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계속 달려갈 것”이라며 “희망버스의 주인인 승객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 앞으로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 26일로 예정됐던 ‘제6차 희망버스’는 일정을 바꿔 오는 19일 오후 5시 부산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승객들의 이야기 마당’ 형식으로 열릴 예정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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