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신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장문의 취임사에서
좁은 건강보험 적용 범위 문제 언급 안해
좁은 건강보험 적용 범위 문제 언급 안해
지난 15일 새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수장이 된 김종대 이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바로 에이4 용지 15장에 이르는 취임사를 낭독한 것이다. 물론 각 언론사에도 배포가 됐다. 취임사는 건강보험의 탄생부터 현재 재정 상태 등까지 건강보험의 거의 모든 논점이 담겨 있다. 이를 보면 김 이사장은 무엇보다도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성을 강조했고, 공평한 보험료 징수 및 효율적인 재정 운용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재처럼 건강보험의 재정은 중앙 집중화해야 하지만, 재정의 지출은 분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16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사회보험을 운영하는 나라는 모두 다 재정지출이 분권화돼 있다”며 대표적으로 독일과 네덜란드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우리나라도 보험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지역 특성에 맞게 재정 지출을 조정해야 하며, 몇 개 단위별로 경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출범한 통합 건강보험공단에 대해서도 여전히 잘못된 길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김 이사장은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 사이의 건강보험료 징수가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를 한 것이고, 이는 지금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며 “당시의 지적이 사실상 맞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취임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사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풀어야 할 첫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바로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견줘 너무 좁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서민층을 비롯해 중산층조차도 중병에 걸리면 의료비 부담 때문에 가계가 파산하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현실이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 적용범위는 전체 진료비의 60%대 초반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건강보험 적용범위가 좁아 서민층의 의료비 부담이 큰 나라는 오이시디에서 미국이나 멕시코밖에 없다. 김 이사장은 오직 건강보험 재정 안정만 이야기할 뿐이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은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건강보험 적용범위를 크게 확대하지 않으면 서민층 및 중산층의 건강보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것”이라며 “재정 지출 효율화나 안정화를 한다해도 국민들의 실질적인 의료비 걱정을 해소해주지 못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문제는 또 재정 지출의 효율화의 강조가 어느 방향을 잡느냐이다. 기존에 건강보험이 지역이나 직장 등으로 나눠져 있을 때에는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 살거나 소득 수준이 높은 직장인은 더 나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대신 가난한 동네에 살거나 저소득층은 혜택 범위가 좁았다. 현재는 건강보험 통합으로 어느 지역에 살든지 소득 수준이 낮아도 건강보험료를 내면 다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의 생각처럼 재정 지출의 효율화만을 강조하다가 재정 지출 측면에서 몇 개 지역별 혹은 직장별로 나눈다면 다시 통합 건강보험공단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한 노동조합인 사회보험노동조합은 “김 이사장의 생각처럼 재정 지출의 효율화를 위해 건강보험공단을 몇개로 나눠 운영한다면 결국 서울의 강남3구와 같은 부자동네에는 높은 수준의 건강보험이, 가난한 지역은 낮은 혜택만 보는 체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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