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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쫓긴 서울역 노숙인들, 추워도 달리 갈 곳 없어…

등록 2011-11-30 15:13수정 2011-11-30 22:08

지난 29일 밤 지하철 서울역 6번 출구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이 잠을 자고 있다.
지난 29일 밤 지하철 서울역 6번 출구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이 잠을 자고 있다.
강제퇴거 조처, 그후 100일
주변 지하보도에 새 거처
퇴거 전 인원수와 엇비슷
구호정책 여전히 겉돌아
“의료·주거지원 등 늘려야”
 지난 29일 밤 10시께 중년 노숙인 2명이 서울역 롯데마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들은 유리문 너머에서 물건을 계산한 손님들이 박스에 물건을 포장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2~3분 남짓 망설이던 이들은 잠겨 있지 않은 유리문 하나를 발견하고는 잽싸게 매장 안으로 들어가 종이상자를 꺼내 나르기 시작했다. 한 명에 대여섯개씩을 얻은 이들의 주름진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노숙한 지 4개월 된 전직 용접공 송아무개(57)씨는 “박스도 손님이 우선이란 거지. 가져가다 걸리면 직원들이 엄청 뭐라고 하는데 오늘은 안 걸렸네. 오늘같이 비온 날은 박스가 없으면 안 된다고.”

 이들은 어럽게 얻은 박스를 끌어안고 지하철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사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른 이들이 남겨둔 지린내가 진동했다. 이들은 6번 출구로 향하는 통로 앞에서 멈칫했다. 역사와 연결된 건물의 젊은 경비원이 다가와 “아저씨 이렇게 박스 들고 계시면 다른 노숙인들 더 모인다니까요. 얼른 가세요”라고 손을 내저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안한 표정으로 박스를 내려놓고 근처를 다시 서성였다. 이 와중에도 시선은 박스 쪽에 꽂혀 있었다. 노숙생활 6개월차인 하아무개(73)씨는 “박스를 아무데나 놔두면 다 치워버린다고. 여긴 보는 감시하는 눈이 너무 많아. 서울역에서 잘 때가 그나마 좋았지”라고 투덜댔다.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산한 2번 출구 쪽 통로에서 자려면 지하철역 셔터가 내려가는 자정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난 29일은 한국철도공사가 악취와 소음에 따른 민원유발, 범죄와 테러위험 등을 이유로 ‘노숙인이 역사 내에서 잠자는 행위’를 금지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때마침 오후까지 내내 비가 왔고, 기온은 영상 6도로 그리 낮지 않았지만, 바람이 세게 불었다. 송씨와 하씨는 모두 서울역이 밤에 문을 닫기 이전엔 역사에서 잠을 잤다. 역사 안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밖에서 잠을 잔 다음부터 구호단체에서 나눠준 이불이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담은 가방을 잃어버려 이들에겐 짐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 노숙 시작할 때 온 곳이 여기라고. 밥도 주고 화장실도 있으니까. 비슷한 처지 사람들도 많고.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위안이라는게 있었지. 그런데 이렇게 쫓겨났으니…”라고 말하는 하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서울역 역사 안의 모든 텔레비전은 밤 11시가 되면 꺼진다. 하루 종일 무료함을 달래주던 텔레비전이 꺼지자 역사 안에 남아있던 20여명의 노숙인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섰다. 노숙생활 8년차 김아무개(65)씨도 끈으로 묶은 박스 뭉치를 들고 일어섰다. 김씨는 우체국 지하보도에서 잔다. 이 지하보도에는 지난 7월 서울시가 노숙인 대책으로 내놓은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긴급 구호시설 공사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김씨에게 서울시가 내놓은 임시주거비 지원, 개방형 카페 설치 등 긴급 구호정책에 대해 묻자 “그런 건 들어본 적이 없다”며 “역사 밖으로 내쫓는다는 얘기도 다른 노숙인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마지막 열차인 부산발 케이티엑스(KTX)가 도착하는 새벽 1시15분께, 자정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굵어졌다. 서울역사에 남아 있는 노숙인은 3명에 불과했지만, 서울역 6번 출구 쪽 폭 7m가량의 통로에는 70여명의 노숙인이 군대 내무반처럼 자리를 펴고 누워 있었고, 우체국 지하보도에 30여명, 2번 출구에 10여명이 있었다.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없는 광장에도 20여명, 옛 역사에도 30여명이 잠들어 있었다.

 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노숙인의 39.1%가 지하도로 옮겼고, 인근공원으로 가기도 한다(13.0%). 나머지(34.8%)는 갈 곳이 없어 배회한다고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노숙인들은 철도공사의 퇴거조처에 대해 “추위와 비를 피할 곳이 없어져 걱정”(19.5%)이라고 하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졌다”(18.3%)고 했다. 보고서에서 김선미 성균관대 강사(사회복지학)는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는 개인적·사회적 충격으로 거처를 상실한 노숙인들에게 또다른 심리적 충격을 가한 것”이라며 “노숙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유발하는 강제퇴거조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숙인 지원단체인 홈리스행동은 현재 서울역 근처의 노숙인을 25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8월 강제퇴거 실시 전의 280여명에 비해 30여명 밖에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이는 서울시가 내세운 긴급대책이 별다른 효과가 없었음을 증명한다. 서울시는 지난 8월 임시주거지원 100명, 노숙인들이 쉴 수 있는 자유카페와 긴급 구호시설 설치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자유카페는 주변 상인 등의 민원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구호시설은 12월 1일 완공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거지원 200명을 추가하고, 응급구호방을 확충하는 등 최대 600명까지 이용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신규 노숙인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대책없는 퇴거조치는 겨울철을 맞이하는 노숙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며 “서울시와 철도공사는 노숙인을 밀어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서울역을 거점으로 한 노숙인,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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