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에도 들어가고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싶어요.”
‘올해의 노숙인 저축왕’으로 뽑힌 박아무개(47·여)씨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이혼하고 10살 딸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뒤 우울증, 섭식장애 등을 앓으며 거리 노숙생활을 했다. 2010년 여성 노숙인 쉼터인 열린여성센터에 들어가 노숙인과 쪽방촌 독거노인들을 위한 도시락을 만드는 공공근로를 하며 새 꿈을 키워왔다. 월 80만원 남짓한 돈을 받아 7개월 새 모은 돈이 벌써 500만원이다.
송아무개(53·남)씨에게 저축은 잃었던 가족을 되찾을 유일한 길이다. 3년 전 12월의 한강에 몸을 던지고도 살아남은 일을 송씨는 “천운이었다”고 했다. 길 가던 사람의 신고로 구조된 송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가 값싼 중국산 제품에 밀려 부도나 집도 잃고 친구도 잃은 뒤였다.
천운으로 살았으니 다시 태어나려 다짐했지만 곳곳에서 압류가 들어왔다. 아이들을 위해 아내와 이혼한 뒤 집을 나온 송씨는 서울역 노숙인 보호시설에서 지내며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나섰다. ‘노숙인’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자식들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빚을 갚고, 버는 돈을 모두 저축했다. 송씨는 지금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만 4개 가진 저축왕이다.
자립의 꿈을 안고 돈을 모으는 노숙인 저축왕은 이들만이 아니다. 서울시가 2일 선정한 ‘올해의 노숙인 저축왕’ 70명 가운데는 한국에 결혼이민을 온 뒤 가정폭력을 피해 거리로 나선 필리핀 여성, 정신장애 노숙인 등도 있다. 이들은 지난해 4~11월 8개월 동안 4억6000만원을 벌어 절반이 넘는 2억6000만원을 저축했다. 상위 7명은 번 돈의 90%를 모두 통장에 넣어두었다.
서울시는 노숙인 저축왕으로 뽑힌 이들 중 상위 10%인 7명에게 상장을 주고, 70명 모두를 오는 3월 서울시가 약정을 맺을 ‘희망플러스 통장’ 가입자로 추천할 예정이다. 희망플러스 통장은 참가자가 3년 동안 근로소득으로 돈을 저축하면 그만큼의 돈을 더해 적립해주는 통장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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