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수사 어떻게 진행됐나
계좌추적 등 오랜 ‘예열’과 압수수색, 임·직원 줄소환, 다시 처벌 수위놓고 서행. 최태원(52)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의 회삿돈 횡령 사건은 긴 수사 기간만큼이나 많은 변곡점을 지나왔다.
최 회장이 지난 10여년간 선물 투자에 끌어댄 돈은 5000억원에 이른다. 2010년부터 이 돈의 흐름을 쫓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투자금의 성격에 주목했다. 최 회장의 개인적 투자로 보기엔 액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검찰은 계열사 자금이 들어가 있을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폭넓은 계좌추적을 벌였다.
그러나 ‘실마리’는 의외의 지점에서 풀렸다. 글로웍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지난해 3월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베넥스)를 압수수색하다가 ‘최태원·최재원 선물투자 흐름표’라는 결정적 단서를 확보했다. 또 베넥스 김준홍(46·구속 기소) 대표의 금고에서는 최 부회장 명의로 발행된 수표 175억원과 금괴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와 금조3부가 각각 진행하던 에스케이그룹 최태원 회장 일가의 횡령 의혹 사건은 지난 8월말 검찰 인사 때 특수1부로 모아졌다. 그 뒤 검찰 수사는 ‘정중동’의 모양새를 보였다. 경제적 파장을 우려해 조용히 ‘선물투자 흐름표’를 추적하며 2000여개 계좌, 출납 합산 25조원에 이르는 방대한 ‘금융 지도’를 다시 맞춰갔다.
밑그림이 다 그려진 지난해 11월, 검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수사팀은 11월8~9일 에스케이 지주회사와 계열사, 베넥스가 투자한 업체 20여곳을 일제히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이 그룹 임원의 성과급을 부풀려 조성한 비자금 139억원을 입증할 단서도 추가로 찾아냈다. 계열사 임·직원들이 잇따라 검찰에 소환됐다. 그러나 이들은 사전에 말을 맞춘 듯, 부인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러나 증거물에 자신이 있었던 검찰은 최 회장 형제의 소환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최 회장 형제의 처벌 여부와 수위를 놓고 검찰은 막판 고심을 거듭했다. ‘원칙대로 처벌’을 주장하는 수사팀과 신중론을 편 검찰 수뇌부의 이견 조율이 길어졌다. 그 사이 수세에 몰렸던 에스케이그룹 쪽도 역공에 나섰다. 재계와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 사건에서 형제를 동시에 처벌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고려 대상으로 떠올랐다. 결국 검찰은 애초 목표로 삼았던 2011년 말을 닷새 넘긴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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