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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옥중 남편 “쌍용차 희망텐트 가봤으면”
면회 간 아내 “내가 대신 다 할게…”

등록 2012-01-16 21:17수정 2012-01-16 22:40

정영신씨가 지난 14일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안양교도소에서 남편 이충연씨를 면회하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안양/사진 박태우 기자 <A href="mailto:ehot@hani.co.kr">ehot@hani.co.kr</A>
정영신씨가 지난 14일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안양교도소에서 남편 이충연씨를 면회하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안양/사진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망루 올랐던 남편은 감옥에
신혼집·가게 한순간에 잃어
희망버스 덕분에 용기 얻어
철거민 눈물 닦아주는 새삶
지난 14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안양교도소 6호 접견실. 투명 아크릴벽과 쇠창살을 사이에 둔 부부는 마이크가 채 켜지기 전에 몸짓으로 말했다. 아내 정영신(40)씨는 밥 먹는 시늉을 하며 “밥 먹었어?”, 달리는 시늉을 하며 “운동했어?”라고 물었다. 수인번호 2944, 푸른 수의를 입은 남편 이충연(41)씨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씨는 정씨의 물음에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정씨 부부는 6년 열애 끝에 2008년 결혼했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꿈꿨던 부부의 소박한 바람은 결혼 8개월 만에 무참히 짓밟혔다. 부부의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 용산구 용산4구역에 개발계획이 본격화하면서였다.

용산4구역에는 정씨 부부가 2006년에 차린 생맥주집 ‘레아호프’와 시부모님 집, 부부의 신혼집이 있었다. 이충연씨는 온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용역들의 퇴거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 됐다.

급기야 2009년 1월19일 남편과 시아버지 이상림씨는 ‘살기 위해’ 레아호프가 있던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쳤고, 진압 과정에서 불이 나 시아버지를 비롯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다. 남편을 비롯한 철거민 8명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경찰을 죽였다는 죄로 감옥에서 네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용산대책위)는 지난 5일 용산참사 관련 구속자들도 설맞이 특별사면을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10일 발표된 사면 대상자 명단에 이들의 이름은 들어 있지 않았다.

정씨는 시아버지가 숨진 지 355일 만에 치러진 장례 이후 칩거에 들어갔다.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도 없이 협상을 타결해야만 했던 울분 때문이었다. 정씨는 “원래는 면회도 주말에 안 왔어요. 주말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너무 많았거든요”라고 말했다. 아수라장이 된 레아호프에서 유일하게 챙겨 나온 벽걸이 텔레비전이 정씨의 친구가 됐지만 그는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화재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그날의 기억 때문에 공포에 떤다.

정씨가 슬픔과 분노를 조금이나마 털어내고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희망버스 덕분이었다. 정씨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책 <소금꽃나무>를 읽고 지난해 있었던 다섯차례의 희망버스에 모두 참가하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희망버스에 참가한 수만명은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함께한 것인데, ‘용산’은 제 일이잖아요. 집에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용산대책위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전국의 철거민을 만나 기운을 북돋고, ‘용산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열심이다.

용산참사 ‘짓밟힌 신혼의 꿈’

접견실의 마이크가 연결되자 창살 건너편의 이씨는 “날씨를 보니까 다행히 추모기간에는 안 춥더라고…”라며 다음날(15일)부터 있을 용산참사 3주기 추모행사 소식을 궁금해했다. 정씨는 “응. 개발구역 돌고 저녁에는 두리반(홍대 앞)에 갈 거야. 위원장님이 칼국수 해주신대”라고 답했다.

평범한 장사꾼이었던 이씨는 옥살이를 하면서도 “제주 강정마을에도 가고 싶고, 쌍용자동차 희망텐트에도 가고 싶다”고 했다. 또 얼마 전 면회를 왔던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의 소식을 전하며 아내에게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세상이 이만큼이나마 변했는데, 그동안 (이를 모르고) 세상에 무임승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아직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인데 그럴수록 의무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일단 편안하게 있어. 내가 대신 다 할 테니까”라고 했다. 누군가가 지켜봤기 때문일까? 이들 부부는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기자의 권유에 이씨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며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사랑해”라고 말했다. 정씨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12분의 짧은 면회가 끝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이씨에게 정씨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가수 루시드폴의 용산 참사를 다룬 노래 ‘평범한 사람’이 흘러나왔다. 정씨는 “99%의 평범한 사람이 오히려 힘든 세상”이라며 “용산이 사람들에게 더 잊히기 전에 구속된 사람들, 다른 개발지역 철거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추모행사에 쓸 국화를 사러 서울역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국화는 정씨 부부의 신혼생활처럼 3년째 개발이 멈춰버린 용산 남일당 건물터에 놓였다.

안양/글·사진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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