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이주여성들의 고민을 상담하고 다문화가정을 돕는 ‘다문화이끔이’ 다섯명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푸른시민연대 사무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엠마포티안(필리핀), 양잉(중국), 앙흐토야(몽골), 나카이 미유키(일본), 레티뒈한(베트남).
하루 전날 한꺼번에 장만
차례상 보고 눈 휘둥그레
설 음식에 고향생각 부쩍
“함께 즐거운 명절 됐으면”
차례상 보고 눈 휘둥그레
설 음식에 고향생각 부쩍
“함께 즐거운 명절 됐으면”
같은 아시아라도 설 풍습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중국·베트남·필리핀·몽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들은 한국의 설이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한국으로 시집온 양잉(35·중국)은 해마다 설날에 남편과 승강이를 벌인다. 빨간 내복 때문이다. “빨간 내복을 사와 남편에게 입히려고 하는데 남편이 안 입으려고 해요. 결국엔 제가 이겨서 남편에게 빨간 내복을 입히죠.” 양잉은 “중국에서는 빨간색이 복을 상징한다”며 “중국 사람들은 설 전날부터 모두 빨간 양말을 신고 마을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살다 6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양잉은 설 차례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음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설은 큰 명절이지만, 한국처럼 음식을 많이 하진 않는다고 양잉은 설명했다. 그는 “중국에선 설에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음식을 차린다”며 “다만 설 음식에는 생선이 빠져선 안 되는데 생선의 (중국식) 발음이 부자를 의미하는 한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4년에 한국에 온 레티뒈한(38·베트남)은 설이면 부쩍 고향 생각이 난다고 했다. 베트남에서도 음력 설은 가장 큰 명절로, 사흘 동안 매일 아침 간단한 차례를 지내며 설 연휴를 보낸다. 레티뒈한은 “떡에 찹쌀과 돼지고기를 넣고 바나나잎으로 싸 8시간 동안 끓이는 설 음식을 만들면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때가 가장 그립다”며 “바나나잎 냄새가 기억에 새롭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온 엠마포티안(39)은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설 연휴에 대부분 집에 있어서 필리핀에서처럼 왁자지껄하게 지내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필리핀에서는 음력 설을 따로 쇠진 않는다. 대신 성탄절부터 새해 첫날까지 축제가 이어진다. 이 기간에 사람들은 댄스파티를 벌이고, 12월31일 밤에는 깡통·냄비 따위를 들고 나와 두드리며 화려한 불꽃놀이로 새해를 맞는다고 엠마포티안은 소개했다.
몽골에는 음력 설에만 나누는 독특한 인사법이 있다. 연장자가 양손을 펴고 양팔을 나란히 펼치면 나이가 적은 사람은 똑같은 자세로 연장자의 팔꿈치 밑에 손바닥을 대며 인사를 한다. 한국 생활 10년차인 앙흐토야(35·몽골)는 한국에서 설 음식을 장만하는 풍습이 몽골과 많이 달라 힘들었다고 했다. “몽골에서는 설 2주일 전부터 친척집을 돌아다니며 만두를 함께 만들어 얼려놓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설 하루 전날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다 만들더군요.” 그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요즘엔 남편이 많이 도와줘 힘이 된다”며 미소를 띠었다.
이들은 모두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시민단체 ‘푸른시민연대’의 상근활동가들이다. 푸른시민연대는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시민단체로, 이주여성들의 고민을 상담하며 다양한 다문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주영(35) 푸른시민연대 간사는 “나라마다 설 문화가 달라 이주여성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며 “서로의 문화 차이를 보듬고 이주여성도 함께 즐거운 설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