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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전두환 구속촉구’ 집회서 경찰과 충돌…부상자 속출

등록 2012-02-26 19:54수정 2012-02-27 08:59

1987년 3월3일 부산 사리암에서 열린 ‘박종철군 49재’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이 당시 <동아일보>에 실렸다. 왼쪽부터 어머니 정차순, 누나 박은숙, 아버지 박정기씨, 뒤쪽 안경 쓴 이는 형 박종부씨다. 남매는 막내 ‘철이’의 뜻을 좇아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87년 3월3일 부산 사리암에서 열린 ‘박종철군 49재’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이 당시 <동아일보>에 실렸다. 왼쪽부터 어머니 정차순, 누나 박은숙, 아버지 박정기씨, 뒤쪽 안경 쓴 이는 형 박종부씨다. 남매는 막내 ‘철이’의 뜻을 좇아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58
1988년 11월12일 ‘전두환·이순자 구속 촉구 행진’을 마친 의문사 유가족 35명과 시민 500여명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전두환·이순자 구속 처벌을 위한 시민대회’를 열었다. 의문사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중요한 집회였다. 유가족들은 민가협·민통련·서총련 등 17개 단체 공동결의문을 낭독했다.

“우리 자식, 형제들은 군과 경찰의 중대장이나 수사관 한두명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폭력 살인을 본질로 하는 식민지 독재 권력의 만행에 의해 타살된 것이다.”

시민대회를 마치고 또다시 행진을 시작하자 전경들이 가로막았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유가족과 시민 여러 명이 중부경찰서에 연행됐다.

박정기는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중부경찰서로 달려가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유가족들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앞장선 이들은 역시나 어머니들이었다. 의문사 유가족이 주최한 집회에서 시민들이 연행되었기 때문에 여느때보다 적극적이었다. 전경들이 방패로 막으며 몸싸움이 시작됐다.

유가족들은 곤봉에 맞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밀고 밀리는 싸움이 되풀이되다 한순간 경찰들이 방패를 세워들고 돌진해왔다. 육박전이 벌어졌다. 방패 날에 맞은 어머니들이 쓰러졌다. 경찰은 넘어진 이들을 군홧발로 밟았다. 민가협의 창립회원인 장신환의 어머니가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아 실신했다. 그는 곧장 병원에 실려갔다. 농성을 함께 해온 시민 김용환이 갑자기 덤벼든 전경들에게 끌려갔다. 그는 전경 여섯명에게 에워싸여 반시간 넘게 폭행을 당한 뒤 병원에 입원했다.

유가족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다못한 박채영이 목소리를 높이며 항의했다. 한 전경이 방패를 세워 그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박채영이 푹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놀란 박정기는 딸 은숙과 함께 그를 부축해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 눈 바로 아래쪽이 방패 날에 찍혀 있었다. 응급치료를 받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에게 박정기가 말했다.

“자칫하면 실명할 뻔했데이. 천만다행이구마. 천만다행이야.”

옆에 서 있던 의사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움이 정말 격렬한가 봅니다.”

부상당한 유가족과 시민들이 계속해서 병원에 실려오고 있었다. 박정기는 다시 중부경찰서로 쫓아갔다. 몇 시간이 흘렀지만 유가족들은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박정기는 당시 경찰이 의문사 문제를 덮기 위해 유가족들이 주최한 집회를 방해하고 폭력으로 누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죽음을 감추려는 짓이라고 우린 생각했어.”

유가족들은 경찰서를 향해 구호를 외쳤다. 평소 자주 외치는 구호였다.

“내 자식 죽인 놈들 천벌을 받으리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그날 모두 일곱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박정기는 한 사람씩 쓰러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대치와 싸움은 네댓시간 이어졌다. 유가족들의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싸움이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가자 경찰서에서 중재안을 내놓았다. 일부 유가족에 한해 면회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밤늦은 시간, 박정기는 이소선 등과 함께 면회를 다녀왔다. 그제야 어머니들은 경찰서에서 물러났다.

박정기가 다시 부상자들이 있는 병원으로 왔을 때 담당 의사는 김용환이 “간에 충격이 갈 정도로 다쳤다”고 진단했다. 김용환과 장신환의 어머니는 반년 이상 치료를 받아야 했다.

명동성당 시민대회 이틀 뒤인 11월14일 오전, 김성수의 어머니 전영희의 제안으로 유가족들은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으로 향했다. 박정기·이소선 등은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 재판은 그해 5월20일 미 대사관에 사제폭발물을 던진 사건에 연루된 박용익(경희대) 등에 대한 선고 공판이었다. 박용익의 어머니는 민가협 회원이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재판을 받는 학생들은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산하 ‘민중생존권 쟁취와 광주학살 주범 미국·청와대 독재 처단을 위한 학생투쟁연합’ 소속의 애국청년결사대원 7명이었다. 이들은 미 대사관에 폭탄을 던진 뒤 ‘광주학살 주범 미제 축출’이라고 쓴 대형 펼침막을 내걸고 성조기를 태우려다 모두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런데 이날 재판정에서 벌어진 소동으로 유가족들의 의문사 농성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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