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재수사 왜?
‘장진수 폭로’ 구체적…미룰 명분 찾기 어려워
‘장진수 폭로’ 구체적…미룰 명분 찾기 어려워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새로운 진술이 공개된 지 12일. 검찰은 그동안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 주무관의 폭로와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과의 대화 내용 등 새로운 정황이 잇따라 불거졌지만, 재수사는 한사코 미뤘다.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까지 나왔는데도 계속 미적댔다.
검찰로서는 한달 앞으로 다가온 4·11 총선의 선거운동 기간과 수사가 겹칠 경우 이 사건이 선거정국의 정치쟁점으로 다시 떠오르고, 결국은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했음직하다. 게다가 이 사건의 잠재적 폭발력을 고려할 때 자칫 청와대까지 ‘불길’이 번질지 모른다는 계산도 했을 법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을 재수사하게 되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불법행위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이는 권력층의 개인적인 비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오랜 한상대 검찰총장이 더욱 소극적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검찰은 ‘장고’ 끝에 결국 재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장 전 주무관의 폭로가 워낙 구체적이어서 더 미룰 명분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조차 “당시에 이런 진술이 나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 말했을 정도다. 최 전 행정관의 회유와 압박 내용이 담긴 육성 파일이 공개됐고, 돈을 전달받은 장소와 시기도 특정돼 있다. 통상적인 재기 수사의 단서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민주통합당이 총선 이후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벼르고 있는 것도 검찰로서는 큰 압박요인이 됐다. 재수사를 끝까지 미루다 특검이 도입돼 ‘윗선’이 드러날 경우, 검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중수부 폐지 이상의 더욱 강력한 개혁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검찰 안팎에선, 재수사만큼은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1차 수사에서 드러난 것 이상을 밝혀내야 할 텐데, 그러기에는 시간을 너무 많이 준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검찰이 재수사 결정을 못 하고 미적대는 사이에 또다른 증거인멸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앞서 1차 수사 때에도 검찰은 압수수색을 계속 미뤄 증거를 인멸할 시간 여유를 줬고, 그 때문에 수사를 그르쳤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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