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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돈 못 버는 아내가 백기투항할 줄 알았다, 그런데…

등록 2012-04-06 20:59수정 2012-04-18 10:55

[토요판] 가족-고시원에 사는 남편
홧김에 가출했더니 집에선 퇴출이래요
부부싸움 뒤 집 나와 1년
나밖에 돈버는 사람 없어
승부는 뻔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아내가 취직을 했다
그만 화해하자는 말에
“재산명의 내 앞으로 돌려놔”
아들도 엄마 편만 들었다

벌써 1년이다.

혼자 누워도 꽉 차는 싱글침대와 작은 책상, 한칸짜리 옷장과 작은 텔레비전 한대. 침대 발치에서 두어 발짝 거리엔 욕실 겸 화장실. 10㎡ 남짓한 이 미니원룸(고시원)은 한수철(가명·48)씨의 집이다. 한씨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렇게나 길어질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퇴근 뒤 한참을 배회하다 돌아온 ‘집’엔 ‘어쩌다 내 신세가 이 꼴이 됐나’ 한씨의 한숨만 그득하다.

한씨는 1년 전 집을 나왔다. “더는 이대로 못 살겠다”고 아내가 선언한 날,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며 짐을 쌌다. “무조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남편 때문에 숨이 막혀 살 수가 없다”는 아내와 “내가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공격하냐”는 한씨의 싸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부부싸움을 한 뒤 화가 누그러들 때까지 2~3일씩 찜질방을 전전하다가, 일주일씩 모텔에서 지냈던 적도 있다. 까짓, 집 나가 ‘한동안’ 사는 게 뭐 대수랴 싶었다. 솔직히 아내가 집을 나가면 고등학생 아들 뒷바라지할 자신도 없었고, 이참에 ‘남편 무서운 걸 보여주겠다’는 속내도 있었다.

그가 호기롭게 집을 나가겠노라 할 수 있었던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아내는 결혼 뒤 줄곧 전업주부로 살림만 해온 여자라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평소 부부싸움을 할 때도 ‘내 집에서 나가라’ 한마디면 아내는 성질이 나도 입을 다물었다. 여차하면 ‘함께 살지도 않는데 왜 내가 생활비를 줘야 하느냐’ 경제권을 무기로 아내를 압박할 작정이었다. 지금이야 못 살겠다고 악악대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아내가 금세 ‘백기투항’ 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택한 게 고시원이었다. 보증금이 없어도 비교적 싼값에 방을 구할 수 있고, 전월세 집과 달리 방 빼기도 수월했다. 웬만한 시설도 다 갖춰져 있으니, 아내가 항복할 때까지 그저 얼마간 지내기에 맞춤하다고 여겼다.

상황은 한씨의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한달, 두달이 지나도 아내 쪽에선 반응이 없었다. 자유로운 생활도 하루이틀이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나. 살짝 불안해졌다. 아들을 통해 슬쩍 화해하자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아내는 예상외로 강경했다. 한씨가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는 일자리까지 구했다고 했다. 생활비를 끊겠다는 ‘카드’가 통할 리 없었다. “당신 잔소리 안 들으니 살 것 같다.” 그새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 있었다. “당장 이혼하고 싶은 걸 애 때문에 참고 있다.” 두려울 게 없는 아내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아내는 “아들이 당신 닮을까봐 두렵다”면서도 “집을 포함한 전 재산을 내 명의로 돌려주면 (재결합을)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아들까지 제 엄마와 ‘한통속’이었다. ‘아빠 잘못이 크다’며 제 엄마 편만 들었다. 제 발로 나온 것인지 쫓겨난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망설임 끝에 가정상담소 문을 두드린 건 지난해 말이다. 상담사는 “당신뿐 아니라 요새 그런 남자들이 많다”고 했다. 지나친 음주와 도박으로 인한 갈등, 외도와 경제적 무능력, 가족 안 소외 등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갈등이 심할 때 2~3일 ‘극약처방’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떨어져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는 말에, 아내에게 함께 상담을 받아보자고 했다. “이제부터 당신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믿을 수 없다”며 “명의 이전부터 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담사는 “우선 아내의 얘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주라”고 하지만, 자꾸 밀어내는 아내를 보면 ‘나만 잘못했냐’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아내가 나를 이용하려고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 영영 집에 못 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씨는 요즘 하루에도 몇 차례씩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이혼할 거 아니면 별거하지 마시라

부부싸움, 잘 안 풀립니다. 집집마다 사정은 좀 다르겠지만, 매번 똑같은 ‘주제’로 싸움을 반복하기 십상이죠.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갖고 매번 싸우자니 남편과 아내는 서로 피곤해집니다. 상대방의 표정, 말투, 손짓 하나까지 지긋지긋, 징글징글해서 얼굴 보기조차 싫다는 부부들 꽤 되더군요.

‘좋은 얘기도 여러번 들으면 싫어진다’는데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죠. 아이들 보기는 또 어떻고요. 버럭버럭 자주 싸우는 부모 모습이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염려도 됩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각방은 쓰지 말라’는 충고가 있지만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때 그 얘기가 귀에 들어오나요. 이럴 때, 내 발로 박차고 나오거나 상대방의 요구에 떠밀려 부부의 ‘별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혼할 작정이 아니라면 별거는 부부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가정문제 상담 전문가들은 전했습니다. 도리어 부부 사이에 파인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하는 쪽이 되기 쉽다고 얘기합니다. 한국가정문제상담소의 전인중 소장은 “부부 갈등이 있을 때 어느 한쪽이 심하게 화를 낸다고 해도 그 역시 상처받은 ‘환자’긴 마찬가지”라며 “집을 나가는 행위는 환자를 버려두고 도망가는 것과 매한가지”라고 말했습니다. 부부 갈등은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드문데, 집을 나가는 건 상황을 피하겠다고 책임을 한쪽에 전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거죠.

물론 ‘냉각기’는 필요하다고 전문가들도 입을 모읍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의 김미영 소장은 “서로 격하게 충돌할 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고, 자기연민에 빠져 상대방의 처지를 돌아볼 여력이 안 되는 만큼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때 ‘거리’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서로를 돌아볼 ‘심리적’ 거리라고 김 소장은 여러번 강조했습니다. 그는 “서로 떨어져 지내면 없던 심리적 거리까지 생기게 마련”이라며 “별거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일정 기간을 정해두고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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