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으로 가꾸어진 단층 건물과 넓직한 골목길의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 한양주택 단지가 멀리 북한산 자락과 어우러져 서울서 보기 힘든 정겨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한양주택 대책위원회 제공
우린 그냥 오순 도순 살고 싶다
서울시 진관내동 한양주택
도란도란 정 쌓은지 27년
96년 ‘아름다운 마을’ 선정 “침수우려 뒤늦게 뉴타운 포함”
서울시 “유리한 보상 억지” 서울시가 선정한 ‘아름다운 마을’이 뉴타운사업으로 고층 아파트 덩이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의 한양주택 마을 어귀엔 ‘물건지 조사 결사 반대’ ‘수용 웬말이냐’라고 적힌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전체 214가구 중 150가구가 물건지 조사 반대 스티커를 문 앞에 붙여놓았다. 이들은 아침식사를 마친 뒤 한양주택 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하기를 석 달 넘게 계속하고 있다. 조를 짜서 서울시청 앞에서 뙤약볕 속에 1인시위를 벌이는 것도 14일째다. 한양주택은 1978년 통일로 주변의 낡은 가옥들을 처리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생겨난 곳이다. ‘계획된 시범마을’답게 반듯반듯한 도로 양쪽으로 50평 대지에 25평 규모의 단층 주택들이 두 채씩 붙어있다. 당시 서울시는 ‘보기 안 좋은 집’을 헐어낸 뒤 주민들을 새로 지은 한양주택에 이주시켰다. 이웃 간에 정이 두텁던 주민들은 누가 시킬 것도 없이 스스로 화단을 보살피고 생울타리를 만들어 마을을 보기 좋게 꾸며왔다. 30년 가까이 이 마을에서 살아온 나윤석(58·한양주택대책위원장)씨는 “집안에 가풍이란 것이 있다면 이 동네엔 ‘동풍’이란 것이 있다”며 “누군가 배추를 절이고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지나던 동네 사람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김치를 담그는 동네”라고 말했다. 12년 전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재심(51)씨도 “아이들이 원없이 뛰놀며 모두 건강하게 자라 손자까지 이 동네에서 키울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오순도순 모여 살던 한양주택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서울시가 은평뉴타운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서울시는 2002년 10월 은평구 진관내·외동과 구파발 일대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105만평의 택지를 개발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당시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자촌 및 한양주택 등 양호한 주택지는 원칙적으로 계획구역에는 포함되지만 그대로 존속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주민들도 “처음엔 한양주택 주민들은 뉴타운사업을 제 일이 아닌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변해갔다. 이듬해 서울시는 기본계획을 세우면서 한양주택을 재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양주택을 그대로 놔두고 주변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1m 이상 흙을 돋워야 하므로 한양주택은 움푹 들어간 곳에 놓이게 돼 침수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또 새로 짓는 뉴타운구역 한복판에 낡은 한양주택을 그대로 놔두면 전체 도시계획이 흐트러진다는 것도 이유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양주택만 존속하고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나홀로아파트’ 같은 난개발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말했다. 그러나 한양주택 주민들은 “동네가 평지에 있고 뉴타운 핵심지역이라 개발이익이 높다는 점이 서울시가 한양주택을 포기하지 않는 진짜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 뉴타운사업본부는 “애초부터 시는 한양주택을 재개발할 계획이었는데 주민들이 토지 보상 등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계획이 중간에 바뀐 것처럼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윤석 대책위원장은 “일부 주민들은 존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개발에 찬성하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서울시가 태도를 바꾼다면 우리로선 마을사람들이 헤어지지 않고 지금처럼 땅을 벗하고 사는 게 제일”이라며 “형식적인 주민공청회말고 주민의견을 수렴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주현기자 edigna@hani.co.kr
도란도란 정 쌓은지 27년
96년 ‘아름다운 마을’ 선정 “침수우려 뒤늦게 뉴타운 포함”
서울시 “유리한 보상 억지” 서울시가 선정한 ‘아름다운 마을’이 뉴타운사업으로 고층 아파트 덩이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의 한양주택 마을 어귀엔 ‘물건지 조사 결사 반대’ ‘수용 웬말이냐’라고 적힌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전체 214가구 중 150가구가 물건지 조사 반대 스티커를 문 앞에 붙여놓았다. 이들은 아침식사를 마친 뒤 한양주택 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하기를 석 달 넘게 계속하고 있다. 조를 짜서 서울시청 앞에서 뙤약볕 속에 1인시위를 벌이는 것도 14일째다. 한양주택은 1978년 통일로 주변의 낡은 가옥들을 처리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생겨난 곳이다. ‘계획된 시범마을’답게 반듯반듯한 도로 양쪽으로 50평 대지에 25평 규모의 단층 주택들이 두 채씩 붙어있다. 당시 서울시는 ‘보기 안 좋은 집’을 헐어낸 뒤 주민들을 새로 지은 한양주택에 이주시켰다. 이웃 간에 정이 두텁던 주민들은 누가 시킬 것도 없이 스스로 화단을 보살피고 생울타리를 만들어 마을을 보기 좋게 꾸며왔다. 30년 가까이 이 마을에서 살아온 나윤석(58·한양주택대책위원장)씨는 “집안에 가풍이란 것이 있다면 이 동네엔 ‘동풍’이란 것이 있다”며 “누군가 배추를 절이고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지나던 동네 사람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김치를 담그는 동네”라고 말했다. 12년 전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재심(51)씨도 “아이들이 원없이 뛰놀며 모두 건강하게 자라 손자까지 이 동네에서 키울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오순도순 모여 살던 한양주택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서울시가 은평뉴타운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서울시는 2002년 10월 은평구 진관내·외동과 구파발 일대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105만평의 택지를 개발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당시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자촌 및 한양주택 등 양호한 주택지는 원칙적으로 계획구역에는 포함되지만 그대로 존속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래 사진은 1996년 서울시로부터 받은 최우수 ‘아름다운 마을’ 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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