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가족
자녀 훈육을 둘러싼 부부갈등
엄마는 감싸주기 선수
아이는 갈팡질팡 눈치 보다
클수록 성격·행동 엇나가
결국 자신을 향해 “못난 놈” “못난 놈!” 문밖에서 남편의 마뜩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반에서 중간도 못 하는 학업 성적, 붙임성이 있길 하나,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모범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남편에게 아들은 늘 기대에 못 미치고,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못난 놈일 뿐이다. 남편은 이런 아들을 “바로잡기 위해선” 더 엄격한 훈육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사랑의 매’를 드는 건 당연하다. 어린 시절 자신이 그렇게 교육받았고 아무 문제 없이 성장해서 오늘날 “100점짜리 인생”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호가 시험에서 90점을 받아온 날엔 “잘했다”는 칭찬 대신 “다음엔 100점을 맞아라”고 독려하기 일쑤다. 아들이 넘어져서 울기라도 하면 일으켜 세워주기보다는 “뚝 그치고 일어나라”고 호통을 친다. “엄마, 아빠는 날 싫어하는 것 같아.” 강호는 어려서부터 이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빠와 함께 있는 자리를 불편해하고, 슬금슬금 눈치만 보다가 피하기만 한다. 강호는 3년 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작은 일에도 버럭버럭 화를 내고,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뛰쳐나가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다. 7년 전 동생이 태어난 뒤부터 강호의 버릇은 더욱 나빠졌다. 어린 동생에게 엄마·아빠의 관심이 모두 쏠리자, 떼를 쓰고 심하게 고집을 부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수록 아빠의 관심은 애교 많은 동생에게 쏠렸다. 사춘기에 접어들고서는 저보다 몸집이 작은 친구들을 괴롭히는 일도 잦아졌다. 반면 저보다 크고 힘센 아이들 앞에선 제대로 말도 못 한단다. 심리상담사는 “강호가 터울이 많이 나는 동생에게 부모를 빼앗기고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강호는 심리테스트에서 자신을 “못난 놈”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남편이 아들 가슴에 찍은 낙인이다. 그 얘기를 듣고선 김씨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김씨는 이런 강호가 안쓰러워 무조건 “괜찮아, 괜찮아” 하며 감싸주기 바빴다. 엄마마저 강호를 나무라다간, 애가 완전히 엇나가진 않을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직장맘인 그는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에게 소홀했던 게 애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퇴근 뒤 모든 일정은 아들에게 맞추고 있다. 남편은 ‘오냐오냐’하는 김씨의 행동이 애를 망친다며 김씨에게 화를 내곤 했다. 당연히 애 문제로 부부가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아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데리고 자겠다며 2년 전부터는 아예 부부가 각방을 쓰고 있다. 대화? 할 시간도 없지만 복장만 터진다. “죽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김씨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자신을 보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평소 쑥스러워 가족들에게 전하지 못한 사랑과 감사, 미움과 용서 등 마음속 얘기들을 <한겨레> ‘가족관계증명서’ 코너에서 들려주세요. 마음을 담은 편지 글(200자 원고지 6매)과 추억이 담긴 사진을 함께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빕스(VIPS)에서 4인가족 식사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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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야!” 부모가 자식을 꾸짖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 바로 이 말 아닌가요? 하지만 부부도 서로 자라온 환경에 따라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그 방법론이 제각각입니다. 부모가 서로 다른 훈육·교육 태도를 보일 때 아이들은 혼란스러워집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란 말이냐”는 거죠. 갈팡질팡하는 아이를 두고 부모끼리 또 싸움을 합니다. ‘누구 방법이 틀렸냐?’를 두고. 가족 안의 분란은 자꾸만 커져 갑니다.
‘이대로 앞차를 확 받아버릴까?’ 출근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던 김윤희(가명·43)씨가 번쩍 정신이 돌아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갓길에 차를 세운 뒤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던 김씨가 끝내 울컥 울음을 쏟아냈다. 어젯밤 김씨의 집에선 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아들 강호(가명·15)가 같은 반 아이를 때려 학교에 불려 갔었다는 얘기를 꺼낸 게 화근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상의를 할 생각이었는데, 남편은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아들을 불러 세웠다. “이 못난 놈, 너는 어째 하는 짓마다 그 모양이냐!” 또 소리부터 질렀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고개를 떨군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약이 바싹 오른 남편은 더 모진 말을 쏟아냈다. “머저리 같은 놈”, “네가 집안 망신을 다 시킨다”, “너 같은 놈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비난이란 비난은 다 나온다. 참다못한 김씨가 “그만 좀 몰아세우라”고 막아섰다. 역시나 “당신이 늘 그렇게 애를 싸고도니까 애가 저 모양”이라는 타박이 돌아왔다.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다. 김씨는 아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아빠는 소리지르기 선수엄마는 감싸주기 선수
아이는 갈팡질팡 눈치 보다
클수록 성격·행동 엇나가
결국 자신을 향해 “못난 놈” “못난 놈!” 문밖에서 남편의 마뜩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반에서 중간도 못 하는 학업 성적, 붙임성이 있길 하나,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모범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남편에게 아들은 늘 기대에 못 미치고,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못난 놈일 뿐이다. 남편은 이런 아들을 “바로잡기 위해선” 더 엄격한 훈육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사랑의 매’를 드는 건 당연하다. 어린 시절 자신이 그렇게 교육받았고 아무 문제 없이 성장해서 오늘날 “100점짜리 인생”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호가 시험에서 90점을 받아온 날엔 “잘했다”는 칭찬 대신 “다음엔 100점을 맞아라”고 독려하기 일쑤다. 아들이 넘어져서 울기라도 하면 일으켜 세워주기보다는 “뚝 그치고 일어나라”고 호통을 친다. “엄마, 아빠는 날 싫어하는 것 같아.” 강호는 어려서부터 이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빠와 함께 있는 자리를 불편해하고, 슬금슬금 눈치만 보다가 피하기만 한다. 강호는 3년 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작은 일에도 버럭버럭 화를 내고,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뛰쳐나가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다. 7년 전 동생이 태어난 뒤부터 강호의 버릇은 더욱 나빠졌다. 어린 동생에게 엄마·아빠의 관심이 모두 쏠리자, 떼를 쓰고 심하게 고집을 부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수록 아빠의 관심은 애교 많은 동생에게 쏠렸다. 사춘기에 접어들고서는 저보다 몸집이 작은 친구들을 괴롭히는 일도 잦아졌다. 반면 저보다 크고 힘센 아이들 앞에선 제대로 말도 못 한단다. 심리상담사는 “강호가 터울이 많이 나는 동생에게 부모를 빼앗기고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강호는 심리테스트에서 자신을 “못난 놈”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남편이 아들 가슴에 찍은 낙인이다. 그 얘기를 듣고선 김씨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김씨는 이런 강호가 안쓰러워 무조건 “괜찮아, 괜찮아” 하며 감싸주기 바빴다. 엄마마저 강호를 나무라다간, 애가 완전히 엇나가진 않을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직장맘인 그는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에게 소홀했던 게 애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퇴근 뒤 모든 일정은 아들에게 맞추고 있다. 남편은 ‘오냐오냐’하는 김씨의 행동이 애를 망친다며 김씨에게 화를 내곤 했다. 당연히 애 문제로 부부가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아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데리고 자겠다며 2년 전부터는 아예 부부가 각방을 쓰고 있다. 대화? 할 시간도 없지만 복장만 터진다. “죽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김씨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자신을 보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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