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경 회장의 ‘밀항의 재구성’
작년 11월초, 해경 외사과에 밀항 첩보
12월말, “저축은행 고위관계자다” 전과자 탐문끝 2명 추적
올 2월, 휴대폰 위치추적 시작
5월 3일, 화성 궁평항 이동 포착
김회장 200억 빼낸 뒤, 운전사에 입막음 7억 건네
밀항선 잠복경찰에 체포
지난해 11월 초, 해양경찰청 외사과는 중국으로 밀항하려는 이가 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대부분의 밀항은 부산·통영 등 남해에서 이뤄진다. 일본에 취업하려는 사람들이다. 서해안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하려는 한국인은 극히 드물다. 처음 제보를 받을 때만 해도 해경 외사과 직원들은 반신반의했다.
12월 말, 더 구체적인 첩보가 들어왔다. 밀항을 준비하는 이가 저축은행 고위관계자라는 내용이었다. 해경은 밀항 전과자 등을 상대로 탐문을 시작했다. 박아무개(51)씨와 엄아무개(53)씨의 행적이 수상했다. 박씨는 밀항 전과자였다. 엄씨는 친구가 운영하는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항구와 배를 알아보고 다닌다는 정황이 파악됐다.
지난 2월, 해경은 박씨 등에 대한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부산과 서울 등을 오가며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경찰은 카페 옆자리에 앉아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저축은행 재판이 진행중에 있으니 재판 결과를 봐서 (밀항을) 시도해야겠다”고 둘은 의논했다. 해경은 첩보의 진실성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밀항을 결행하는 날짜였다. 도대체 언제 배에 오를 것인가. 지난 5월2일, 박씨와 엄씨가 서울에서 만났다. “저축은행 (퇴출명단) 발표에 임박해서 나갈 것”이라고 둘은 의논했다. 언론에 따르면 그 날짜는 5월5일이었다. 해경은 3일 또는 4일을 ‘디데이’로 추정했다. 다음날 오전 박씨 등이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으로 출발하는 게 휴대전화 위치추적에 잡혔다. 해경 외사과 직원 7명이 모두 따라나섰다.
박씨와 엄씨는 물론 이아무개(59)씨도 항구에 나타났다. 나중에 경찰이 조사해보니, 이번 밀항 전체를 기획한 주역이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불안해하는 김찬경(55) 미래저축은행 회장에게 “밀항하는 방법도 있다”고 권한 것은 이씨였다. 이씨는 서울 지역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평소 김 회장과 반말로 대화할 정도로 막역했다.
궁평항에 나온 이들은 사전 현장 답사를 하는 듯했다. 저녁 6시부터 경찰은 현장에 잠복했다. 어느 어선을 타고 밀항할지 해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선장에게도 말을 넣어뒀다. 선원으로 위장한 경찰이 배에 미리 올라탔다. 낚시꾼으로 위장한 경찰은 항구에서 대기했다.
김 회장은 이즈음 서울에서 미래저축은행 명의의 우리은행 수시입출금식 계좌(MMDA)에서 203억원을 빼냈다. 수표로 인출된 70억원가량은 유상증자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에게 ‘보상금’ 형식으로 전달됐다. 나머지 현금 130여억원도 운전기사 최아무개씨를 시켜 투자자들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그리고 최씨의 도움으로 대포차를 타고 궁평항으로 향했다. 김 회장은 최씨에게 “돈을 인출하고 밀항을 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며 입막음용으로 7억원가량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저녁 8시, 김 회장이 차를 타고 항구에 나타났다. 오아무개(49)씨가 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오씨는 김 회장과 함께 중국까지 동행하면서 일종의 경호원 구실을 맡을 예정이었다. 저녁 8시30분, 두 사람이 배에 올라 객실에 들어갔다. 배에 있던 경찰이 두 사람을 체포했다. 육지에 있던 이씨와 엄씨도 잡았다. 김 회장은 챙 달린 모자, 남색 점퍼, 운동화 차림이었다. 주머니에서 여권과 1200만원이 나왔다. 김 회장의 얼굴은 초췌했다.
경찰에 잡혀간 김 회장은 “기계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밀항 계획 따윈 아예 없고, 이씨에게 돈을 전달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4일 새벽 무렵, 경찰은 김 회장의 금융거래내역을 확인했다. 대출금액이 놀랄 정도로 많았다. 오전 10시, 그가 저축은행 회장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어떻게 내 신분을 알았나. (이제) 할 말 없다.” 김 회장이 경찰에게 한 말이었다.
검찰과 해경의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김 회장은 이씨 등에게 일사불란하게 임무를 나눠 맡기며 밀항을 준비했다. 조폭 출신인 이씨가 총지휘를 하고, 박씨가 실무책임을 맡았으며, 엄씨는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경호를 맡은 오씨는 김 회장이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동행할 예정이었다. 이들은 중국 쪽 폭력조직과도 선을 대 밀항을 도와주는 대가로 3억원을 송금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한편, 운전기사 최씨는 김 회장과의 약속을 지켰다. 검찰 관계자는 “최씨가 김 회장의 밀항 시도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최씨는 마지막까지 김 회장을 지키려고 했고, 김 회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다 붙잡혔다”고 전했다. 최씨는 김 회장의 횡령과 도주 등을 도운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횡령 및 밀항단속법 위반 방조)로 7일 구속됐다.
검찰은 구속된 운전기사 최씨 등을 상대로 김 회장의 자금 횡령을 도운 경위와 이 과정에서 다른 임직원이 가담한 사실이 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밀항을 준비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 쪽은 최씨에게 돈을 건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회장 쪽 변호인은 “130억원을 출자자들에게 돌려주라고 지시를 했을 뿐 사례비를 준 적이 없다”며 “운전기사 최씨가 임의로 130억 가운데 7억원을 빼간 것”이라고 말했다. 밀항을 직접 계획한 이씨 등에게 김 회장이 얼마를 건넸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환봉 황춘화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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