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논쟁 번져
농장주-지자체 보상협상 중 방치
“빚만 5000만원” “보상못해” 갈등
동물협회 “소부터 살렸어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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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만 5000만원” “보상못해” 갈등
동물협회 “소부터 살렸어야” 비판
죽은 소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썩어가고 있다. 살아남은 소들은 갈비뼈를 앙상하게 드러낸 채 주검들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텅 빈 사료 포대를 씹어 먹거나 흙을 파 먹는 소들의 모습도 보인다.
지난 1월 소값 폭락에 항의하며 사육을 포기했던 전북 순창의 한 축산농가에서 지금까지도 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때 80여마리였던 소는 이제 26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1일 동물사랑실천협회 회원들이 해당 농가를 찾아 촬영한 영상을 보면, 축사는 이미 폐허나 다름없다. 현장을 방문했던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는 “썩어가는 냄새가 굉장히 심하고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며 “동물 학대가 명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농업정책 실패를 성토하는 축산농의 생존권 투쟁과 동물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격렬히 부딪히고 있는 현장이다.
농장주 문아무개(56)씨는 15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중학교 중퇴하고 16살부터 시골로 들어와서 소를 쳤는데, 전두환 때 외국산 소 들여와서 한번 망하고, 97년 아이엠에프(IMF) 때문에 두번째 망하고, 이번에 또 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만 가만히 있었으면 나는 잘 살았을 것”이라며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씨가 소들에게 사료를 주지 않은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정부는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면서 농가마다 사료값이라고 8000만원을 금리 1%에 대출해줬다. 2년 거치 3년 상환 조건이었는데, 3년이 지나니까 금리가 8%로 뛰었다. 문씨는 “내가 이 빚 값느라고 조상들한테 물려받은 논밭을 다 팔았다”며 “일을 열심히 하면 재산이 불어야 하는데, 빚내서 다 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지난해 10월 결혼했는데 아무것도 못해주고 식장에 가만히 서 있다가만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소를 보는 마음이 편하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씨는 책임을 져야 할 국가가 도리어 자신을 죄인 취급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생존 위기에 처한 문씨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나, 살아있는 생명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면서까지 목적을 관철하려는 행위는 지나치다고 지적하고 있다. 농민들이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배추밭을 갈아엎거나 우유를 쏟아붓는 행위 등은 흔히 있었지만, 동물을 죽이는 극단적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박소연 대표는 “진작에 이를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군수나 도지사가 동물보호법이 정한 격리조처를 취했으면 될 일”이라며 “보상 문제는 나중에 풀더라도 일단 소들부터 살렸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전북도청·순창군청과 문씨는 소들의 목숨을 볼모로 지루한 협상을 진행했다. 순창군청 관계자는 “소들을 대신 키워주겠다, 대신 판매해주겠다 등 여러 제안을 했지만 문씨가 수용하지 않았다”며 “문씨는 그동안 죽은 소에 대한 보상과 기초생활수급권자 지정 등을 요구했지만 그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고추농사를 시작하는 문씨를 위해 고추건조기를 지원하는 방안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문씨로부터 10여마리의 소를 넘겨받기로 했다. 이르면 다음주 초 10여마리의 소를 경기도의 한 농장으로 이동시킬 계획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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