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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르신들 ‘2천원 행복’ 사라진다

등록 2012-05-20 20:04수정 2012-05-21 10:11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노인전용극장 ‘서대문아트홀’의 폐관을 앞둔 20일, 마지막 공연을 보러온 노인들이 초대가수의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노인전용극장 ‘서대문아트홀’의 폐관을 앞둔 20일, 마지막 공연을 보러온 노인들이 초대가수의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노인전용 ‘서대문아트홀’
관광호텔 건설로 마지막 공연
오세훈 때 만들고 생색내더니
뒤론 용적률 높여 재건축 유도
600여 노인들 “뿔이 나서 왔다”
무임승차권에 2000원 보태면 주말 하루가 거뜬했다. 1000원에 3개 묶어 파는 가래떡을 매점에서 사고, 그 옆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뽑아 극장에 들어서면 두어시간 동안 특급 디너쇼 못잖은 호사를 누렸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노인전용극장 서대문아트홀은 자식 눈치 보지 않고 적은 돈으로 건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1964년 세워진 화양극장을 2008년 노인전용극장·공연장으로 탈바꿈시킨 결과였다. 보통 관객에겐 7000원을 받았지만, 노인들은 2000~3000원만 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 잔치가 이제 마지막에 이르렀다.

20일 오후 서대문아트홀 앞에는 “어르신의 문화를 제발 지켜주세요”라는 붉은 글씨의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서울시가 ‘어르신 문화사랑방’이라고 홍보했던 극장이 며칠 뒤면 25층 관광호텔에 밀려 사라지게 됐다. “호텔이 들어선대….” 노인들이 수군대며 극장에 들어섰다.

이날 오후 2시 원로가수 안정애·명국환씨, 희극인 이종남·방일수씨 등이 찾은 가운데 마지막 공연이 시작됐다. 600여 객석은 만원이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울고 넘는 박달재> 등 옛 노래가 무대 위에 올랐다. 어느 노인은 일어나 어깨를 들썩였다. 또다른 노인은 가사 한자락 틀리지 않고 따라 불렀다. 걸쭉한 농이 섞인 만담과 품바타령이 이어졌다. 신이 나서 무대 위로 올라오는 노인들도 있었다. <백마야 우지 마라>로 유명한 원로가수 명국환(79)씨는 “뿔이 나서 왔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늘어나는데 전통문화를 공연할 공연장은 없잖아요. 그나마 노인들 마음 달래줄 곳을 없앤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니, 왜요? 웬 호텔이요?”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수원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대문아트홀을 찾았던 배경심(61)씨는 “극장이 헐린다”는 소식에 반문만 거듭했다. “우리 노인들이 말려서 해결되는 일이라면 말려주겠다”고도 말했다. 배정자(73)씨는 “남자들은 파고다(탑골)공원이나 종묘에 간다지만 우리 할머니들은 갈 데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인 2010년 10월 서울시는 민간업자로부터 서대문아트홀을 대관해 ‘청춘극장’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노인복지공간으로 활용해왔다. 지난해 10월 개관 1주년을 맞아선 “1년 만에 15만명이 관람했고 하루 평균 722명이 다녀갔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노인복지공간을 마련했다고 홍보하던 서울시는 그 철거도 함께 준비했다. 청춘극장 설립 직후인 2010년 11월 서울시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심 지역의 관광호텔 건립을 활성화하겠다”며 서대문아트홀 부지의 용적률을 1085%까지 높여줘 사실상 재건축을 유도했다. 2011년 10월 건물주로부터 땅을 사들인 시행사가 세입자들에게 연말까지 건물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반대하는 세입자에 맞서 시행사는 철거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22일 철거 집행을 결정하는 명도소송 1심 판결이 나온다.

이 자리에 들어설 25층 호텔을 누가 운영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2009년 신라호텔이 기존 건물주와 호텔 위탁운영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이후 건물주가 바뀌면서 양해각서의 효력이 다했다. 앞으로 세워질 관광호텔의 위탁운영을 맡을지에 대해 신라호텔 쪽은 “노코멘트”라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극장 벽에는 오는 6월2일까지 상영될 옛 영화의 제목들이 적혀 있었지만, 특급 디너쇼 못지않던 공연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오후 5시 마지막 공연이 끝난 극장 입구 주변에는 철거 딱지가 붙어 있었다. 춤추고 노래하며 옛 추억에 잠기던 노인들의 일요일 오후가 저물고 있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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