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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독수리 5형제’ 도 없고…좌우 균형 잃은 대법원

등록 2012-05-23 21:13수정 2012-05-23 21:28

(상)진보·보수 양날개로 날아야 / (하)무늬만 다양성으론 안된다

오는 7월 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 대법관의 동시 퇴임으로 대법관 4명이 교체된다. 대법원장과 재판에 관여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대법관의 3분의 1이 바뀌는 것이다. 대법원은 새달 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열기로 하는 등 이미 인선 절차를 진행중이다.

이번 교체로 대법원은 14명의 대법관이 모두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됐다. 이미 퇴임한 김영란·이홍훈·박시환·김지형 전 대법관에 이어 전수안 대법관까지 퇴임하면서, 기본권과 소수자 보호 판결에 앞장섰던 대법원 내의 ‘독수리 5형제’는 모두 물러나게 됐다. 큰 변화를 맞게 된 대법원이 더욱 보수화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법원의 다양성 확보는 이제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

전원합의체는 활성화했으나…
지난해 9월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뒤 대법원은 대법원장 등 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모두 16건 내놓았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1999~2005년) 때보다 크게 늘었다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2005~2011년) 재임 6년 동안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95건이었으니, 그동안의 연평균보다 많다.

논의도 활발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때는 전원합의체 판결 가운데 전원일치 의견이 36%였으나, 양승태 대법원장 때는 4건으로 25%였다. 대부분의 대법관이 관여 사건 가운데 두서너 건에서 반대의견이나 별개의견을 내놓았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결론엔 찬성하되 다른 논리를 댄 별개의견을 한 차례 냈고, 김용덕 대법관은 13건 가운데 6건에서 다수의견에 반대했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에 각각 보충의견이 따라붙은 경우도 몇 있다. 소부(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재판부)에서 결론을 못 내렸거나 중요한 판례 변경이 있을 때 전원합의체가 열리게 되니, 대법원은 자못 활발한 논의를 편 셈이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런 외형과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전원합의체 판결 16건의 상당수는 조세, 손해배상 등 민사 분야에서 법리적 논란을 정리한 것들이었다. 기본권 보장이나 형사사법의 원칙, 노동자의 권익 등과 관계된 판결은 찾기 힘들다. 한 대법원 관계자는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의미있는 판결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양 대법원장 취임 뒤 두달 넘게 전원합의체 재판을 열지 않았다. 첫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것은 지난 1월19일이었다. 그사이 대법원이 마땅히 입장을 정하고 논의를 했어야 할 사안을 외면한 것도 여럿 있다.

대법원은 그런 판결 하면 안 되는 곳?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대표적이다. 대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퇴임한 박시환 전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정당한 사유에 의한 거부’로 판결하는 방안을 오랫동안 고심했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연간 600~700건에 이르는 터엔 당연한 고민이다. 하지만 다수 대법관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어서, 자칫 애초 의도와는 다른 판례로 굳어질 수도 있는 전원합의체 회부를 망설였다는 것이다.

박 전 대법관 퇴임 며칠 뒤인 지난해 11월22일, 유럽인권재판소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를 거듭 기소한 터키 정부에 대해, 유럽인권협약 제9조의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침해했다며 위자료 1만유로(약 1559만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위법이라는 선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에게 처벌 판결을 한 판사들의 불법행위를 인정해 국가배상을 명령한 것이어서, 우리 법원으로서도 ‘중대한 사정변경’이라고 할 만했다. 그 뒤에도 비슷한 판결이 이어져, 이대로라면 한국만 유일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국가로 남을 형편이었다. 지난 3월에는 국내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유엔에 집단 청원을 내기도 했다.

이즈음 대법원 안팎에서도 이 문제를 대법원이 전향적으로 다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수 대법관은 ‘대법원이 어떻게 그런 판결을 할 수 있겠느냐’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가까운 시일 안에 재론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기본권 신장과 소수자 보호에 대한 감수성 등 시민사회가 대법원에 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지난 11월 박시환·김지형 대법관 퇴임 이후 대법원 구성이 더욱 보수 일색으로 굳어진 탓이겠다.

전원합의체에서 판례 변경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점한 다른 사건들에서도, 대법원에 대한 신뢰 손상이 우려된다거나 기업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판결의 무게가 덜한 소부로 다시 넘긴 일이 최근 들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전국교직원노조의 시국선언을 정치적 집단행위로 보아 유죄를 확정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보수적 분위기는 어느새 확고하게 대법원을 지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그동안에도 ‘독수리 5형제’가 보수적인 대법원에서 중과부적이었지만, 홀로 남은 전수안 대법관은 아마 더 큰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진보성향 5명 임명뒤
다양한 의견 놓고 치열한 논쟁
사학비리·파업 업무방해죄 등
소수자 권익 대변 판결도 여럿

7월엔 모두 MB 임명 인물로
양심적 병역거부 논의 회피 등
이미 보수적 분위기 팽배한데
“더욱 보수화되지 않을까” 우려

‘소수’가 할 수 있는 일
‘독수리 5형제’ 시절이라고 해서 진취적인 판결이 쉽게 나왔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법관 4명의 소부에서나,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나 다양한 의견을 지닌 소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재판의 긴장감은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2009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의 경우, 소부 논의 당시 관여 대법관들은 4~5일에 한번꼴로 이례적으로 잦은 회의를 하는 동안 서로 반대의견에 반박의견을 보내는 등 치열한 논란을 벌였다고 한다. 기존의 일반적 법해석에 반론을 제기한 ‘독수리 5형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홍훈·김영란·박시환·김지형·전수안 대법관 등은 여러 사건에서 같은 의견을 내면서 새로운 판결을 이끌었다. 박 전 대법관을 기준으로 보면, 재임중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다수의견 외에 29건의 반대의견이나 별개의견을 내는 동안 전수안 대법관과 19건, 김지형 전 대법관과는 18건에서 같은 의견이었다. △안기부 엑스파일 보도, 사립학교 종교교육의 자유 등 기본권 신장 관련 사건 △제주지사실 압수수색, 범민련 등 무죄추정의 원칙을 비롯한 형사사법의 진전과 관련된 사건 △상지학원 임시이사 등 사회적 공공성과 관련된 사건 △파업의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 등 근로자의 권익과 관련된 사건 등의 판결 내용은 모두 그런 ‘협업’의 결과였다.

전체 대법원 사건의 99.5%가 처리되는 소부에서는 그런 소수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한 전직 대법관은 “(소부 4명 가운데) 의견이 다른 두 사람이 법리로 공격해올 때 다른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거들어주면 그나마 제대로 논의를 할 만했다”며 “항상 소수 입장에 서니까 굉장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소부에 비슷한 의견을 지닌 동료 대법관이 있을 때 의미있는 판결이 훨씬 많이 나왔고, 논의도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소수’가 대법원 안에서 결코 한둘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국민 40% “진보·보수성향 대법관 비율 동등해야”

참여연대, 성인 1000명 조사
“대법원 신뢰하지 않는다” 56%
“대법관따라 판결 달라져” 67%

“사법부가 국민을 섬기는 법원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유일한 길이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퇴임사 머리말에서 ‘국민이 신뢰하는 사법부’를 새삼 당부했다. 실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얼마나 될까. 국민 10명 중 5명은 우리 사회의 최종 분쟁해결 기관인 대법원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19~20일 이틀 동안 ‘대법원 및 대법관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23일 밝혔다. 조사 대상자는 전국 만 19살 이상 성인 1000명을 성별·연령별·지역별로 뽑아 이뤄졌다.

조사 보고서를 보면, ‘대법원을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절반이 조금 넘는 55.5%(‘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46.9%,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8.6%)로 나타났다. 반면 신뢰한다는 쪽은 ‘매우 신뢰한다’ 4.9%, ‘대체로 신뢰한다’ 38.7%로 조사됐다.

또 응답자 중 67.2%는 ‘대법관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이 달라진다’고 밝혀 국민 중 상당수는 사건의 본질보다는 대법관의 성향별 구성이 판결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 대법관 비율을 동등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꼽은 응답자가 39.6%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어 ‘검사나 판사가 아닌 다른 법조 경력 대법관을 늘려야 한다’가 20.3%, ‘서울대 등 특정 학교에 편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 ‘여성 등 소수자 출신 대법관을 늘려야 한다’ 12.3% 차례로 나타났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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