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100가구 표본 추적 결과
지금은 길음 뉴타운 아파트로 바뀐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서 30여년 동안 살았던 김아무개(58·전기배선공)씨는 지난해 결국 서울을 떠나 경기도 시흥시의 한 변두리 동네로 옮겨왔다.
길음동 재개발 때 14평짜리 낡은 판잣집을 가지고 있던 김씨도 아파트분양권을 받았다. 하지만 33평짜리 아파트를 가지려면 추가부담금 1억2천만원을 내야 했고 이를 마련하고자 은행에 1억원을 대출받았다. “처음엔 어떻든 버텨보자”고 했지만 자꾸만 불어나는 빚이 무서워 결국 3년 전에 분양권을 2억6천만원에 팔았다. 이주대책비로 받은 융자금 3200만원과 은행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니 손에 쥔 것은 1억원 가량이었다.
그 돈으로 금천구 독산동 전셋집 등을 전전하다가 “그래도 내집”을 찾아 시흥의 3500만원짜리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다. 김씨는 “옛동네가 비록 ‘달동네’였지만 길음시장 물가가 싸 영세민 살기엔 더없이 좋았던 곳”이라며 “여기서는 일감을 구하기 어려워 남은 돈을 까먹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주민 재정착율이 10%대밖에 되지 않는 뉴타운개발사업(<한겨레> 7월20일치 1면)의 ‘낙오자’인 90%의 주민들이 어디로 옮겨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길음뉴타운 2구역에 살았던 원주민 100가구를 표본 삼아 주소지를 추적했다.
조사 결과 100가구 중 40가구가 장위·정릉동 등 성북구의 인근 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나타냈다. 강북구(18가구), 도봉구(10가구), 노원구(5가구) 등 성북구와 가까운 강북 지역으로 이동한 주민도 33가구에 이르러 70% 이상이 예전 거주지 주변에 삶터를 마련했다.
특히 이들 73가구 가운데 그나마 이웃의 오래된 아파트로 옮긴 주민은 17가구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56가구는 다세대나 다가구주택, 미개발지역의 비좁은 단독주택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세나 월세로 주거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생활 근거지를 쉽게 바꾸기 힘든 대다수 주민들이 재개발 이후에도 주변 지역의 영세민 주거지역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또 김씨처럼 아예 구리·남양주·안산·의정부·성남시 등으로 서울에서 밀려난 주민도 16가구나 됐다. 나머지 8가구는 구로·성동·중랑구 등 서울의 비강남 지역으로 이동했다. 강남(1가구)·서초(1가구)·송파(1가구) 등 이른바 강남 지역으로 이동한 주민은 3가구에 불과했다.
정릉동의 24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살고 있는 김아무개(70)씨는 “예전 집에서는 전·월세를 2~3가구 놓아 수입이 있었는데 재개발 때문에 보증금을 내주고 이사하다 보니까 결국 남은 게 없다”고 말했다. 길음동에서 소규모 가내공장을 운영하던 김아무개(53)씨는 “공장을 강북구 미아동으로 옮기면서 새집 구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길음동보다 집값도 비싸 은행융자 7천만원을 더 받았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edigna@hani.co.kr 하정민 오수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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